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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르포] 35년째 '고물 행상' 김임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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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22일 경북 포항시의 한 고물상 야적장에서 김임수씨가 이날 벌어들인 1만여원의 돈을 세고 있다. [포항=조문규 기자]

22일 해질 무렵 경북 포항시 도구리 마을.

35년째 고철행상을 하는 김임수(66.金琳洙)씨가 가위를 치며 낡은 손수레를 끌고 골목길에 들어서자 한 아주머니가 담장 너머로 빠끔히 내다본다.

"고물 좀 있어요?" 金씨가 묻자 아주머니는 뜰 한구석에서 비닐하우스 수리에 쓰고 남은 쇠파이프 자투리를 한 뭉치 끌고 나온다. "고마워요. "金씨가 리어카를 뒤적거려 빨랫비누 한장을 건넨다.

동네 야적장에 들러 고철을 부리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무겁다. 새벽부터 40㎞를 돌아다녀 손에 쥔 돈은 1만3000원. 예전 수입(3만원)의 절반도 안 된다.

재활용 산업의 산 증인인 고철행상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철난에 이은 고철 모으기 운동의 여파 때문이다. 지자체 등이 고철을 가져온 시민에게 주는 보상은 ㎏당 250원. 반면 고철상이 사람들에게서 철물을 사는 값은 kg당 230원으로 가격경쟁력이 없다. 최근에는 읍.면.동에 할당량까지 내려오고 마을 간 수집경쟁까지 불면서 마을과 길거리의 고철은 씨가 말라버렸다.

어느 시절이고 金씨가 남들에게 번듯하게 비쳐진 적은 없지만, 요즘엔 자꾸 처음 가위를 들었던 1970년이 생각난다. 방랑벽이 있던 32세 청년은 고향(경북 상주)을 떠나 찾아든 서울 거여동 쪽방 촌에서 '가위질 스승'을 만났다.

"'휘~철컥, 휘휘 철컥'하는 멋진 가락의 가위소리가 귀에 닿는데 이거다 싶더라고."

갑작스레 환해지는 그의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 70년대의 신문을 뒤적여 보았다. 73년 7월 완공된 포항종합제철이 연간 100만t 이상의 철강제품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철강 입국'을 외쳤댔고, 이때부터 10여년 동안 전국의 고물 일꾼들은 철강의 원료를 대는 '귀한 몸'의 대우도 받았다. 새마을운동은 아궁이와 무쇠솥을 몰아내 마을마다 고철이 흔하게 나뒹굴던 시절이 70년대였다.

"동네 어귀에서 내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아주머니들이 '경상도 아저씨 왔네'하며 며칠씩 쌓아둔 솥뚜껑이며 함석 쪼가리들을 내놓곤 했지."

후한 인심에 대한 金씨의 보답은 강냉이 한 바가지가 고작이었지만 몇 집만 돌면 손수레가 가득 찼다.

서울의 현대화로 고철야적장이 차츰 줄어들자 金씨는 대전.속초.익산 등을 떠돌다 84년 지금의 포항으로 일터를 옮겼다.

10여년의 보잘 것 없는 평온을 깬 것은 98년의 외환위기였다. 그때도 정부는 원자재가 부족하다며 고철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7개월 동안 모은 양이 298만t이었다. 맨홀 뚜껑을 훔치다 붙들린 고물상 등 요즘의 세태를 빼다박은 사건이 벌어졌었다.

외환위기 당시 하루 끼니를 걱정했던 金씨는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고철 파동에 힘들어하고 있다.

"고철난이 왜 일어나는지는 몰라. 고철값이 올랐대서 좀 나아지려나 했더니 동네에서 고철이 사라졌어. 멀쩡한 맨홀 뚜껑에 눈길이 가기도 하지."

정부에 손 안 벌리고 살겠다는 그의 뜻이 이어질지, 고물행상들이 사라지면 고철난 극복 이후에 그 자리는 누가 메워줄지 궁금하다.

포항=임장혁 기자<sthbfh@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 엿 → 강냉이 → 세탁비누…손수레 인심도 변해

고철값은 상등품이 ㎏에 230원 정도다. 음료용 철캔 30개, 스테인리스 밥그릇 3~4개를 모으면 1㎏이 된다. 숟가락은 20원 정도. 고물행상이 쇠붙이 1㎏을 사들여 대형 고물상에 팔아봐야 20~30원밖에 남지 않는다. 소득의 원천은 고철 4~5㎏ 내주고 비누 한장만 받는 인심이다.

인심에 대한 보답으로 고철상이 건네는 성의도 시대를 따라 변해왔다. 1970년대 초반까지 엿이 주류였다.

그 후 10여년간은 강냉이 튀기와 뻥튀기가 유행이었다. 차츰 먹을 것의 매력이 약해지면서 80년대부터 세탁비누가 평정했다. 외환위기 이후로는 "돈으로 달라"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우리나라 고철수집상이 몇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회의 관심도 없는 데다 무슨 조직을 만들 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이 연간 200만t의 고철을 모으는 점으로 미뤄 전국에 5만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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