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한은, 정부·시장서 독립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물가안정을 추구하는 한국은행에 대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 정책을 펼치라고 새 정부가 압박하는 듯한 징후가 발견된다. 한은은 정부와 시장의 압력에 꿋꿋이 버텨라.”

정운찬(얼굴) 전 서울대 총장이 한은이 정부와 시장에 휘둘려선 안 된다며 한은의 독립성 제고를 강하게 촉구했다. 18일 한국경제학회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기조연설문 ‘금융환경 변화와 중앙은행의 역할’을 통해서다.

정 전 총장은 최근 한은에 대한 정부의 압박에 대해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임기 내 성과를 나타내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인플레이션 비용을 치르더라도 통화정책이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운용되길 희망한다”며 “한은은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정부의 회유와 압력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을 추구하는 정부와 정치권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에 동참해 줄 것을 직·간접적으로 주문해 왔다.

정 전 총장은 이 같은 단기 부양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은 단견적일 수밖에 없고 이에 장단을 맞춰 통화정책이 이뤄지면 경제의 불확실성은 증폭되고 금융시장은 더욱 투기에 빠져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현재 한은은 성장이냐 물가안정이냐 하는 가장 고전적인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지만 법적인 위임은 너무도 명백하다”며 “한은법 1조는 통화정책의 유일한 목표를 물가안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또 한은이 정부만이 아니라 시장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시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해 경제가 어려워진 사례로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1990년대 일본의 거품 붕괴를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90년 대 초의 3개 투신사에 대한 한은 특별융자를 꼽았다.

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