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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정부 지침 진짜 없나” 학교 “성적 다 드러날 텐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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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 15일 오후 7시. 대전시교육청 초·중등교육과 직원들이 긴급 소집됐다. 예정에 없던 비상회의는 오후 11시까지 이어졌다. 이날 발표된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석차에 따른 반 편성과 0교시(정규수업 전 오전 7시 보충수업)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쏟아졌다. 16일에는 초·중·고 교장단 회의를 긴급 소집하기 위해 직원들이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렸다.

#2. 서울 대원중학교는 1~3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금요일 영어·수학 시험을 보기로 했다. 매달 한 번씩은 교사들이 출제한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과목 시험도 본다. 지난달 발표된 중1 진단평가 결과가 서울 평균 이하로 나온 데다 학교 교육 자율 전면 허용으로 충격을 받은 탓이다. 이 학교 김일형 교장은 이날 긴급 직원회의를 열고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며 “수업 방법을 바꾸라”고 당부했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과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4·15 교육 자율화 조치’에 따라 학교 간, 지역 간 무한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까지 교과부가 통제해 오던 ‘지침’에 따랐던 교육청과 학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자율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방의 한 교육청 간부는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정부의 교육 자율화 정책을 알았으니 현장의 혼란이 크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16개 시·도 부교육감은 17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에 모여 교육 자율화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교육청 자생능력 시급=이원근 대전시부교육감은 “지금까지 지방에서 독자적인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과 운영이나 학업 성취도 제고 등 교육 정책을 수립하려 해도 중앙 정부에서 다른 지침이 내려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이젠 지역 교육청이 책임과 사명감을 갖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며 환영했다.

일부 교육청에선 아직도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데 익숙한 경우가 많았다. 수도권의 한 교육청 직원은 “교과부로부터 정식 공문도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일을 추진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익숙한 업무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별로 여건 달라=석차에 따른 반 편성, 0교시 수업, 사설 모의고사 허용에 대한 시·도 교육청의 입장은 다양했다.

김남일 경기도부교육감은 “자율화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학교 현장의 의견 수렴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서울·부산 대도시와 지방의 교육 여건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김 부교육감은 “경기도만 해도 서울 강남 못지않은 교육 열기를 가진 성남시 분당구가 있는가 하면 휴전선 인근의 산골 학교도 있다”며 “도·농 간 교육 격차를 줄여야 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방과 후 학교 운영을 학원에 맡기는 문제만 해도 시골 학교의 실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수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은 “규제를 풀어주기는 쉽지만 현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다시 규제로 묶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자율권을 학교에 줬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학력 격차에 대해 교육청이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차분히 준비해야=지난달 중1 대상 전국 진단평가 때 시·도별 학력 차가 공개된 뒤 각 교육청은 학력 향상에 신경을 쏟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시행된 교육감 주민직선제는 재선을 노리는 현직 교육감들에게 압박이 되고 있다. 시·도 간 학력 경쟁이 불붙어 해당 지역의 학력이 곧 교육청의 성적표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당장 ^충남(6월 25일) ^전북(7월 23일) ^서울(7월 30일) ^대전(12월 17일) 등 네 곳의 선거가 예정됐다.

서울대 백순근(교육학과) 교수는 “지방과 단위 학교로 교육 정책의 실질적 권한이 이양되는 첫 조치”라며 “각급 학교와 교육청은 그간 정부의 ‘지침’에 숨어 책임 회피를 해 온 측면이 있는데 이젠 책임 있는 결정을 할 때”라고 말했다. 자율화 시대라고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배노필·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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