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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村山의 사과와 일본의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지난 7월 독일점령하의 비시괴뢰정권이 유대인 수만명을 나치수용소에 넘겨준 행위에 대한 프랑스의 책임을 인정해 국제사회의 상찬을 받았다.독일은 최근 8순의 한 저명한 학자가 나치요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등 끝 없는 자기정화(淨化)를 멈추지 않고 있다.전후 50주년을 맞아 유럽사회는가해자와 피해자가 힘을 합쳐 오욕(汚辱)의 과거를 청산하면서 하나의 연대감을 일구어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눈을 東아시아로 돌리면 역사청산은 언제나 종전(終戰)의 시점에서 별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20세기전반 동아시아를 능멸한 일본이 이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그에 따른 정당한 배상을 하지않고 눈가림식으로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일본총리가 15일 패전 50주년에 즈음한 담화를 통해 진일보한 역사인식을 천명한것은 다소간 위안이 되고 있다.역대의 일왕(日王)과 총리들이 교묘한 말재주로 침략및 식민지배의 사실인정조차 어물쩍 넘기고,따라서 책임과 사과에 대해서도 「절묘한」 어휘선택으로 두루뭉실넘겼던 전례(前例)와는 달리 무라야마총리는 「침략.식민지배.사과」라는 딱부러진 역사인식의 용어를 사용했다.그는 한걸음 나아가 『과거의 잘못을 두번 다시 반 복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어린 세대에 전하겠다』고 다짐하는 성숙성을 보였다.
우리는 이러한 무라야마총리의 사죄표명을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일본 특유의 빈말이 되지 않기 위해선 무라야마총리가 담화문에서강조했듯 일본의 성실한 후속대응을 강력히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일본지도층의 망언사태가 재발돼서는 결단코 안된다는 점이다.둘째,일본은 정신대배상.징용자의 체임(滯賃)및 연금의 반환,원폭피폭자들에 대한 치료및 보상,약탈문화재 반환,사할린강제징용거주자에 대한 배상등의 현안에 성의있는 조처를 해야 한다.셋째,무라야마총리의 약속실천을 위해서라도 일본은 교과서의 역사왜곡을 즉각 시정해야 한다.피해자가 용서하고 화해의 마음을 갖도록 환경을 조성할 책임과,동아시아의 공동번영및 항구적 평화의 열쇠는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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