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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Blog] 딸이 납치됐다면 … 특수요원 출신은 어떻게 대응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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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주 개봉한 영화 ‘테이큰’의 주인공(리암 니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목표에 매진하는 액션영웅입니다. 10대 후반의 딸이 인질매매범에게 납치당하자마자 경찰 신고를 생략하고 곧바로 나 홀로 구출작전에 돌입합니다. 유괴범과의 대결을 마다 않는 겁 없는 아버지로는 ‘랜섬’의 백만장자 멜 깁슨도 있었습니다만 ‘테이큰’의 리암 니슨은 가진 돈은 없어도 남다른 능력이 출중합니다. 바로 특수요원 출신이거든요.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명분으로 가정에 소홀했던 그는 이제 은퇴하고 이혼한 아내가 사는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갑부와 재혼한 아내도, 그래서 새 아버지와 살게 된 딸도 행복해 보입니다만 가끔 소박한 생일선물이라도 건네며 딸을 지켜보고 싶은 게 아버지의 마음이지요. 그런데 딸이 유럽여행을 계획하자 지구촌이 얼마나 흉악한 세상인지 산전수전 다 겪은 특수요원 출신의 아버지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예감대로 딸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납치범의 표적이 되고, 끌려가기 직전 아버지에게 전화를 겁니다. 노련한 아버지가 일종의 대비책으로 미리 건네준 글로벌 자동로밍 휴대전화를 통해서지요.

득달같이 파리로 날아간 아버지는 딸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질주합니다. 한때 동료였던 프랑스 첩보조직의 경고도 무시하고, 납치범의 거점을 차례로 쳐들어가 악당들을 파리목숨처럼 해치웁니다. 목숨을 구걸하는 경우에도 이 몹쓸 범죄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액션의 개연성이나 사건의 배경설명이 좀 부족해 보이는 것 역시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그의 일방통행적 활약은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이지요. 피에르 모렐이라는 낯선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의 제작자는 뤼크 베송. 할리우드 이상으로 할리우드적인 영화를 지향해온 프랑스 감독입니다.

따지고 들면 골치 아플 것 없는 액션영화인데 보고 있으니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가 겪은 사건들 때문이지요. 어린 자녀의 등하굣길을 대신 지켜주는 보디가드 사업이 바빠졌다는 애기까지 들려옵니다. 어쩌면 이 영화가 지난 주말 국내 흥행에서 인기를 누린 이유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리암 니슨이 연기하는 아버지는 딸의 휴대전화를 빼앗은 납치범과 통화하는 그 순간부터 선전포고를 합니다. “내 딸을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대신 “내 딸을 돌려주지 않으면 너 죽는다”라는 식입니다. 하나마나한 얘기입니다만 모든 아버지가 그 같은 액션영웅일 리는 없지요. 사법제도든, 민생치안이든, 혹은 일산의 소녀를 도와준 이웃 여대생의 순발력 있는 행동이든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공동체의 힘이 영화 밖에서는 제대로 작용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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