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명태 그물로 멸치 잡는 꼴” 효과 의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7호 11면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강북 집값은 당분간 더 오를 전망이다. 사진은 아파트 단지와 학원이 밀집한 서울 중계동.

한 은행 PB팀의 부동산 담당자인 A씨는 요즘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일이 평소보다 두세 배 많아졌다. 친척이나 친구, 회사 동료는 물론 이들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들까지 강북 투자 방법을 문의해 오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전화를 받느라 다음 날 출근에 지장이 있을 정도다. 내용은 한결같다. “유망한 강북 투자 지역이 어디냐, 어떤 아파트나 재개발 지분을 사야 하느냐”라는 것이다. 강남이나 재건축 얘기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 B씨는 “마땅한 곳이 없다고 해도 강북이면 괜찮지 않으냐라는 반응이 대다수”라며 “묻지 마 투자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치솟는 강북 부동산 잡으려 규제 나섰지만

강북 부동산이 난리다. 부동산 불안의 진앙지인 강남이나 신도시가 잠잠한 데도 강북 집값만 홀로 뜀박질한다. 노원구 등 ‘강북 3구’에서 시작된 상승세가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고 소형 아파트와 연립주택은 물론 중형 아파트까지 들썩거릴 조짐을 보인다.

급기야 ‘친시장’을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가 규제의 칼을 빼어 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장 상황과 규제의 효과 등을 감안하면 ‘칼로 물 베기’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너무 성긴 그물
정부가 11일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주택거래신고제다. 신고 가격과 실거래 가격이 일치하는지 감시하고, 자금조달 계획을 내도록 해 투기적 수요를 차단하자는 취지다. 신고 대상은 전용면적 60㎡(22평) 이상이거나 시가 6억원 이상 아파트다. 현재 노원 등 서울 서북권이 대상지역으로 우선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멸치 어장에 명태 그물을 놓는 격’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제도 자체가 강남 중대형 고가 아파트를 타깃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북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소형 아파트는 대부분 60㎡ 이하다. 더욱이 150㎡ 이상이면 신고해야 했던 연립주택은 2006년 3월 이후 아예 대상에서 제외됐다. 심리적 압박 효과도 크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시작된 실거래가신고제가 이미 거래신고제의 효과를 상당 부분 내고 있다.

세무조사의 효과도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상승 폭이 빨라지며 내 집 마련을 서두르는 실수요가 자극받고 있다. 그렇다고 더 강한 대책을 내놓기도 어렵다.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서민 밀집 지역의 상승세를 막는다며 기존보다 높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반발을 감당키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선 것은 강북 상승세의 양상이 2003년 이후 강남 급등 때와 유사한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강남은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교육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호가 상승을 초래하고, 이주 수요와 가수요가 집중되며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재건축 기대감이 재개발 기대감으로 바뀐 것을 빼면 강북에서 지금 나타나는 양상과 똑같다. 강북의 나홀로 상승세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강북 집값이 크게 올랐던 1990년대 초는 전국의 집값과 땅값이 함께 상승했다.
 
내년 이후 전망은 엇갈려
강북 강세가 적어도 올해까진 유지되리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시장과 지역적 상황 모두 강북에 유리하다. 강남은 이미 크게 오른 데다 대출규제와 기준시가 6억원의 벽에 막혀 게걸음을 하고 있다. 강북은 대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가격도 6억원 미만이 절대 다수다. 2기 신도시와 도심 재개발로 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전세 수요도 강북으로 쏠리고 있다.

서민이거나 내 집 마련 수요자인 이들이 값이 비싼 강남과 1기 신도시를 택하기엔 무리가 있다. 낡은 집이 많은 만큼 뉴타운과 도심 역세권 고밀도 재개발에 적합한 지역도 강북이 대부분이다. 후보들이 지역개발 공약을 쏟아낸 지난 총선은 기대심리를 더욱 부풀렸다. 상계동 B공인 관계자는 “오름세가 커지자 실수요와 투기 수요는 물론 서울집을 미리 사두자는 지방 매수세까지 일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이후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팀장은 “수도권 주택보급률이 아직 100%가 안 되고, 자가 보유율은 더 낮다”며 “수급이 균형을 이룰 때까진 소득과 물가 수준에 맞춰 집값이 오를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강북 집값이 많이 올랐다지만 5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3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그래픽 참조>

반면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 팀장은 “강북 부동산 강세는 강남에 비해 오르지 못했던 데 따른 갭 메우기 성격이 강하다”며 “봄철 이사 수요와 학기 초 학군 수요가 사그라지면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원갑 부동산뱅크 연구소장도 “강북 일부 지역은 이미 강남권 일부 지역의 평당 가격을 추월했다”며 “실수요가 상승세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2010년 2기 신도시 분양과 2012년 행정도시 이전을 계기로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재개발 시장은 이명박 정부 5년간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공통적인 진단이다. 총선 이후 도심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오히려 강해진 데다 용산·뚝섬 등 상징적인 지역들의 개발이 본격화되고 역세권 고밀도 재개발도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강남·신도시는 관전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 전반이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강남에 비하면 강북은 ‘마이너리그’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양해근 팀장은 “강남과 비교한 상대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온 상태에서 균형 가격을 찾아가는 측면이 크다”며 “핵심적인 재건축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강남이나 신도시로 파급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상준 리얼티랩 소장은 “강북은 ‘큰손’들이 손대기엔 덩치가 너무 작고 번거로운 투자 대상”이라며 “이번 상승은 실수요자와 잠재 수요자 등 개미 투자자들의 머니게임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박 소장은 그러나 중형 아파트 값이 지역적으로 비슷해지고 있는 점을 불안 요소로 꼽았다. 그는 “강북 고급 단지와 강남 일반 단지의 100㎡급 아파트 값이 모두 6억원대 중후반”이라며 “강남북 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강남이 다시 상승하며 전국적인 부동산 불안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