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설립 어떻게 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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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04면

한나라당이 18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위한 논의가 탄력을 받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국에 100개의 자사고를 설립하겠다고 공약했으나 ‘귀족 학교’라는 지적에 부닥쳐 거의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지난달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자사고에 대한 방향을 밝히지 않았다. “농산어촌 지역 모형을 우선 개발하겠다”며 자사고 설립 문제를 뒤로 밀쳐놓았다. 민감한 자사고 문제를 언급해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국회의원 당선자 69명 공약 교육부, 15일부터 본격 논의

그러나 총선 결과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교육과기부는 15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자율형 사립고’를 안건으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성삼제 학교제도과장은 “올 12월까지 자사고의 법적 근거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교육과기부가 입장을 선회한 것은 한나라당 당선자들이 대거 자사고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정태근(성북갑) 의원은 “길음 뉴타운 내 자사고 유치를 확정 짓겠다”고 약속했고 전여옥(영등포갑) 의원은 “자사고 등을 유치하고 그 주변에 명품 학원을 만들어 ‘학원 찾아 3만 리’ 현상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홍준표(동대문을) 의원도 전농 7단지 뉴타운에 특목고와 학원단지를 동시에 만들겠다고 했다. 여기에 당론으로 ‘자사고 설립 반대’를 외치던 통합민주당 후보 5명이 가세했다. 전병헌(동작갑) 의원의 경우 “노량진 뉴타운 내 특목고를 유치하고 성남고를 자사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중앙SUNDAY가 정책 공약을 분석한 결과 당선자 69명이 자율형 사립고를 해당 지역구에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그중 43명의 지역구가 수도권이다. 수도권 당선자(111명) 10명에 네 명꼴로 자사고 설립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 설립의 법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규정돼 있다. 당초 시행령에는 교육감이 자사고를 지정할 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노무현 정부 때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과 사전 협의하도록 바꿨다. 그러나 교과부는 이번에 문제의 조항을 원위치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안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내년 초 자사고 선정 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16개 시·도는 100개의 자사고 가운데 하나라도 더 할당받기 위해 줄다리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자사고 전환의 주체인 사학 재단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이현진 총무부장은 “자사고 설립 문제는 정치논리에서 논의되었을 뿐 정작 중요한 교과과정, 학생 선발권, 교원 수급 문제 등에 대해 사학에 한번도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경기 오산고 이은우 교감은 “인수위 시절 자사고의 법인 전입금을 등록금의 10%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학교가 등록금을 일반고의 세 배 이상 받지 못하면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O학교 재단 관계자는 “학생 선발권을 학교에 주지 않고, 추첨으로 배정한다면 자사고의 의미가 없다”며 “가급적 규제를 없애고 학교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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