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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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10)천장에 매달린 알전구 불빛이 길남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한 되들이 커다란 술병을 움켜쥐고 고개를 숙인 길남의 얼굴을 진규는 찬찬히 바라보았다. 저게 그러고 보니 정말 우네 그려.
진규가 몸을 바로하면서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그는 자신의 앞에 넘어져 있는 술잔을 들어 바닥에 남아 있는 술을 홀짝 마셨다. 오느라고 고생했다고 저 귀한 술을 큰 병으로 꺼내놓을 때는 이제 사람 사는 꼴을 보는가 했더니 젠장헐,이 자식은 또무슨 속앓을 일이 있어서 이 모양이람.진규가 목소리를 높였다.
『앗따,그 자식 지랄은 더러워서 못 보겠네.』 『뭐 어째 임마.』 『뭐가 어떻다고 이러는 거냐.아니,우리가 그놈의 탄광에서 얼마나 힘들게 왜놈들과 싸웠는지 아냐.』 진규는 내친김이다싶어 목소리를 높였다.
『섬 바닥을 다 뒤집어놓게 싸웠다.사무실 때려부수러 간다고 다들 몽둥이에 곡괭이 들고 나섰던 거,모르면 너도 임마 가만히나 있어.』 눈물이 흐를듯 가득한 눈으로 길남은 진규를 쏘듯이바라보고 있었다.
『개새끼들.』 『뭐라구.너 뭐라고 했어,지금….』 『개새끼.
그래서,화순이가,죽었단 말이지.』 길남이 마디마디 끊어질듯 중얼거렸다.못으로 철판을 긁는듯한 목소리였다.
진규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말이 나왔으니 말인데,화류계 여자 하나 죽은걸 가지고 너는 왜 이러는 거야.그애가 네 뭐라도 되냐.애비 에미라도그러지는 않겠다.』 길남이 잡고 있던 술병으로 탁자를 내리쳤다.술병이 산산히 조각이 나면서 유리가 뛰쳐나갔고,탁자 위를 흘러내린 술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몸을 일으킨 길남이 발을 들어방문을 걷어찼다.
인부들의 숙소와는 떨어져서 사무실 뒤쪽에 붙여 지어진 자신의방을 뛰쳐나온 길남이 캄캄한 마당으로 달려나갔다.그가 마당가의소나무를 끌어안듯 한손으로 부여잡으며 몸을 기댔다.
『화순아.』 짐승처럼 소리치면서 그의 몸이 천천히 꺾여서 소나무 아래로 내려갔다.푸드득거리며 새가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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