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푸틴 집권 2기] 中. 개혁의 虛와 實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 14일 치러진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모스크바 AP=연합]

2000년 크렘린에 입성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당초 전임자의 꼭두각시에 그칠 것이라던 일부의 관측을 깨고 강하고 유능한 지도자로 부상했다. 지난 4년간 그가 추진한 개혁정책은 러시아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에 가려진 문제들도 적지않다.

◇개혁 추진과 성과=푸틴 대통령은 취임 후 권력의 중앙집권화에 착수했다. 89개 연방 주체로 구성된 러시아 전역을 7개의 연방지구로 나누어 대통령 전권대표를 파견했다. 반면 지방정부 수장들의 권한은 많이 축소했다. 난립하던 소규모 정당들을 통합, 거대 여당인 '단합당'을 창당했다.

막강한 자금력과 정경유착을 통해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올리가키'(과두재벌) 수사에도 착수했다. 푸틴의 강력한 사정의지 앞에 옐친 대통령 시절 대표적 올리가키인 석유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영국, 금융.언론재벌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는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푸틴은 지난해 10월 정치적 야심을 보이던 거대 석유기업 유코스 사장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전격 구속, 올리가키 척결에 대한 의지를 또다시 보여줬다.

푸틴은 공산당 등의 결사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혁명 이후 처음으로 개인의 토지 소유를 허용하는 토지법 개혁을 단행했다. 사회주의 잔재로 정부가 지고 있던 연금 부담을 기업과 개별 수익자에게로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한 대규모 연금제도 개혁도 추진했다.

푸틴의 개혁정책은 1998년 모라토리엄(대외 지불유예) 선언으로 파탄 지경에까지 몰렸던 러시아 경제를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4년간 러시아 경제는 연평균 6%대의 고도성장을 계속했다.

90년대 중반 세자릿수에 이르던 인플레율도 지난해 13%까지 떨어졌다. 99년 85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670억달러로 늘어났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재정수지도 2000년 이후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10월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러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두 단계 올려 투자적격 등급인 'Baa3'로 상향 조정했다.

◇개혁의 그림자와 남겨진 과제=개혁의 성과가 드리운 그림자도 짙다. '법의 독재'를 내세운 개혁 드라이브는 자유언론 탄압과 야당 지도자, 인권단체 등을 박해한다는 시비를 낳았다.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화와 옛소련 체제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는 "군 및 정보기관 출신 장교들이 행정부와 입법부의 25%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계층 및 지역간 빈부격차도 심해졌다. 올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개인재산 10억달러 이상의 세계갑부 명단에는 러시아인이 25명이나 포함됐다. 러시아는 미국.독일에 이어 셋째로 부자가 많은 나라다.

반면 러시아 인구의 23%인 3500만여명은 지금도 월 80달러(약 9만6000원) 정도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빈곤층이다. 수도와 지방 간 경제수준 차이도 심해져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섬'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체첸 분쟁은 여전히 푸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다. 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반군세력 진압 과정에서 체첸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 군인들의 납치.강간.고문 등의 인권유린이 계속되고 있다.

또 사정당국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각종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챙기는 관료들의 부정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군 개혁도 여전히 요원하다. 매년 2000여명의 병사가 자살 등 각종 사고로 죽어가고 있다. 상급자의 학대를 비롯한 열악한 근무환경이 주요 원인이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