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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미국 ‘영파워’ 투표 열기 … 주소도 캠퍼스로 옮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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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뉴저지주가 고향인 펜실베이니아대 학생 알리사 비슬리가 대학 로고가 새겨진 캠퍼스 보도 위에 서 있다. 그는 운전면허를 옮겨 유권자 등록을 했다. [스크랜턴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프라이머리(대선 예비경선)가 2주 뒤(22일)로 다가온 펜실베이니아주에선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두 상원의원 모두 18~29세 젊은이들에게 러브콜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힐러리는 지난달부터 이곳 150개 대학을 누비며 “나를 찍으면 여러분의 학비 부담은 줄고 학교지원금은 늘어날 것”이라 외치고 있다. 20대 딸 첼시도 100곳 가까운 캠퍼스를 돌면서 또래들에게 어머니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바마도 질세라 “등록금 부담을 줄여줄 확실한 후보”라고 적은 포스터 수십만 장을 뿌리며 대학가 유세를 강행군하고 있다.

AP통신은 7일 “미국에서 노령 인구가 셋째로 많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조차 힐러리와 오바마는 젊은이들에게 올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2004년 민주당 경선 당시에는 투표자의 9%에 불과했던 젊은 층이 올해는 이미 14%로 크게 늘어난 데다 경선이 남은 9개 지역에선 더욱 증가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젊은이들의 열기는 더욱 뜨겁다. 뉴저지주에 집이 있는 펜실베이니아대 학생 알리사 비슬리(20·여)는 최근 운전면허를 이곳으로 옮기느라 면허관리소에서 하루를 날렸다. 주거사실을 증명해 유권자 등록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중간고사를 앞둬 바쁜 때였지만 내가 미는 후보의 어깨에 미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문제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난주 초 오바마의 유세가 펼쳐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광장에는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2만 명의 청중이 운집했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연설을 경청한 그들의 90%는 20대였다.

미 언론들은 이 같은 ‘영파워’ 돌풍으로 힐러리의 절대우세가 점쳐져 온 펜실베이니아주 경선도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AP통신은 7일 “현지 대학 조사 결과 펜실베이니아주 18~44세 유권자 층에선 오바마(51%)가 힐러리(42%)를 앞섰다”고 전했다.

젊은이들의 투표 열풍은 1월 3일 첫 대선 예비경선이 벌어진 아이오와주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 당시 오바마는 4년 전보다 33% 늘어난 젊은 층의 몰표에 힘입어 ‘골리앗’ 힐러리를 꺾는 기적을 일으켰다. 젊은 층 투표자는 계속 늘어 지난달 텍사스주 경선에선 무려 세 배로 불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힐러리와 오바마가 등록금 보조 프로그램 등 젊은이들의 관심사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거는 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유세 현장에서 만난 미국 젊은이들은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았던 과거엔 꿈도 꿀 수 없었던 대접을 받고 있다”며 “정치에서 원하는 걸 얻으려면 투표장에 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감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서 내일(9일) 제18대 총선이 실시된다. 역대 최저 투표율이 우려된다고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새겨들어볼 말이 아닐까.

강찬호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