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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펀치 뒤에 오는 잽을 조심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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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32면

“잽이 기다리는 2라운드가 시작됐을 뿐이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권투론(論)’으로 말을 풀어갔다.
곳곳에서 풍악소리가 울리던 지난해 10월 그는 “더 이상 고속도로를 달리긴 힘들다”며 험난한 자갈길을 경고했다. 기업 돈벌이에 비해 주가가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올 초에는 “1월 중순에 단기 바닥을 확인한 뒤 10% 남짓 반등할 것”이라고 짚었다. 시장은 그의 말대로 흘렀다.

투자자 ‘2大 궁금증’ ①한국 증시 본격 반등하나

이 센터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최근까지 1라운드엔 모든 것이 빨리 움직였다. 불과 다섯 달 만에 코스피가 20% 넘게 빠지며 변동성이 극심했고 투자자들을 코너로 몰고 갔다”고 말했다. 권투에서 초반 에너지가 넘칠 때 강펀치를 날리듯 증시도 흡사하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 베어스턴스 침몰로 1라운드가 종을 쳤다”고 봤다. 지난해 10월 말 이후의 세계적인 증시 침체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쓰나미 때문이었다. 그런데 월가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마저 쓰러지면서 파문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제 베어스턴스가 J P 모건에 넘어가면서 사태가 일단락됐고, UBS와 리먼 브러더스 같은 금융사들이 자금 조달에 성공한 데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잇따른 대책으로 공포가 희망으로 바뀌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힘이 빠진 상태에서 소나기 잽이 기다리는 2라운드에 올라야 하는 게 문제다.” 이 센터장은 지금의 반등세가 ‘체력 상승’을 밑바탕에 깔지 않은 게 찜찜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서브프라임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안개가 걷히는 듯하자 다시 흥분한다는 말이다.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안 좋고, 국내 경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고민은 아직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 센터장은 고용이며 소비 같은 경제 속살이 단단한지, 기업 실적이라는 몸통은 튼튼한지 확인돼야 ‘상승장의 재림’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의 반등 국면은 지나친 하락 뒤에 주가가 오르는 ‘베어마켓 랠리’라는 진단이다.

그는 2라운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미 서브프라임 바이러스가 실물 경제로 파고든 상태에서 경기가 금세 좋아지긴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다만 “1라운드와 달리 급락은 아니며 천천히 하락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잽’을 맞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린 마당이어서 잽으로도 그로기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하락기의 바닥을 1500 언저리로 예상하는 이유다.

하지만 가드를 잘 올리면 4분기부턴 회복을 바랄 만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FRB가 내놓은 대책을 보면 일단 모든 것을 질러버리는 판국이었다.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했다. 4분기에는 이런 대책의 효과가 ‘매크로하게’나타날 것이다.”

그는 향후 반등장세의 선두주자로 ‘중소형주’를 꼽았다. 조선이며 기계 같은 성장주들이 반등 과정에서 한풀이를 하면서 꿈틀거릴 수 있지만 성장성을 너무 빠르게 주가에 반영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보기술(IT)·자동차·증권 주식도 좋게 봤다. 삼성전자만 해도 “투자자들이 이젠 반도체 부문 실적이 나쁜 이유 대신에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 경우를 그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경계할 건 ‘사람의 심리’다. 잘 안 바뀌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주가가 회복 낌새를 보이자 ‘상승 발판이 마련됐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투자자가 많다”고 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전부 죽는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 코스피가 1300 선까지 밀린다는 공포감마저 일었다. 지금은 2000 얘기가 또 나온다. 심판이 승리의 손을 들어주기 전에 방심했다간 카운터 펀치를 맞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래프의 마법사’는 지금을 어떤 국면으로 볼까. 주가 차트를 무기로 대중의 ‘투자심리’를 잘 짚었던 삼성증권의 유승민 연구위원도 “1분기에 바닥 신호들이 나타났다”는 데 동의했다. 패닉 상태에 이른 투자심리가 급락장을 통과하면서 충분한 과매도가 이뤄졌고, 바닥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유 위원은 지난해 여름부터 ‘과열 신호’가 포착됐다며 빨간 신호등을 켜왔고 시장은 그 흐름을 따라왔다. 코스피가 급락을 앞뒀던 7월 초엔 차트 지표를 통해 상승체력이 약해졌다고 진단했고, 11월엔 미국·일본의 투자심리 사례를 원용해 올해 1분기 주가 저점을 1600 선으로 제시했다.

지금 ‘바닥 통과’를 말하는 근거는 뭘까. 유 위원은 그중 하나를 소개했다. “지난 3월에 코스피의 860여 종목을 대상으로 주가의 방향성과 상승 모멘텀을 보여주는 ‘트렌드 스코어링 오실레이터(trend scoring oscillator)’가 8개월 만에 반전했다.” 모든 종목을 아우른 지표인 만큼 쉽게 꺾이진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속전속결론’도 꺼냈다. 그는 “과거 금융시장에서 위기가 껍질을 벗고 드러나면 초기에 주가가 급락했다. 금융 부실을 해결하는 데 2~5년 정도 걸린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가는 2~3개월 떨어지는 데 그쳤다”고 했다. 원래 증시가 패닉에 빠지면 미래의 불확실성까지 합쳐서 반영되는데, 정부의 적극적 대응에 힘입어 투심이 회복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1987년 월가의 ‘블랙 먼데이’와 2003년 한국의 SK사태 등을 봐도 이런 흐름을 밟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도 미국이 7개월간 금리를 3%포인트 가까이 내리고, 1조 달러의 긴급자금을 풀면서 투자자 마음을 돌렸다”고 봤다. 이종우 센터장의 1라운드 비유와 일치한다.

그러나 실적 전망을 좋게 본다는 점에서는 이 센터장보다 낙관적이었다. 유 위원은 “거래소 기업들의 실적은 1분기에 전년보다 1%, 2분기엔 17% 늘어날 전망”이라며 “미국도 S&P 500 종목 기준으로 1분기 성적표가 -5%, 2분기는 -2%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3~4분기부터는 미국의 경기부양책이 가시적 성과를 나타낸다는 기대감에 따라 투자심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봤다.

4분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이 센터장과 일치하는 코드다. 유 위원은 한걸음 나아가 코스피 지수도 하반기에 2000 선 안팎까지 이르고, 바닥은 더욱 높게 다져질 것으로 봤다.
다만 내년에는 미국 경제의 회복 강도가 다시 시들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유 위원이 속한 삼성증권은 향후 주가 시나리오를 ‘W자’로 봤다. 내년에는 세계 증시가 재차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는 “투자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성장성이 큰 쪽에 베팅해야 돈을 땄지만 올해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는 “일단 1850선까지는 IT주나 자동차처럼 소외됐던 종목들이 빛을 발할 것이다. 다만 이 지수를 넘으면 조선·기계 같은 종목들의 ‘성장 스토리’가 다시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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