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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식의 동물 이야기]일본원숭이 집단탈출 소동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6호 39면

일본원숭이 무리

갈등이라는 문제를 집단 안에서 해소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도 몇 십 년 동안 지역 갈등을 없애자고 외쳐 보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빈부 갈등이나 계층 갈등 등 많은 부분에서 얽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물 중에도 사회생활을 하는 종(種)이 많다. 이러한 동물들은 대개 서열이 정해져 있어 우두머리의 영향력 아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생활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거나 우위를 차지하려는 개체 간, 소그룹 간의 다툼은 빈번히 일어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진전되기도 한다. 1982년 6월 용인 에버랜드에서 일본원숭이 10마리가 탈출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그것 역시 내부 집단 간의 장기적인 갈등이 빚어낸 사건이었다.

일본원숭이 전시 시설은 관람객이 출입문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원숭이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져 있다. 높은 울타리 윗부분엔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을 치고 중간 부분엔 1m 높이의 철판을 덧대 원숭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게다가 관람시간에는 사육사가 철저히 감시한다. 그런 완벽한 탈출 방지장치를 뚫고 야반도주한 것이다.

당시 그곳에는 40여 마리의 원숭이가 살았는데 소동을 벌인 10마리의 소수집단과 30여 마리의 다수집단,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소수집단은 우위를 차지한 다수집단의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다. 이들은 나중에 무리에 합류했기에 다수집단의 텃세에 저항하기 힘들었고 먹을 것과 잠자리도 후순위로 밀렸다.

조금이라도 저항을 할라치면 집단구타를 당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생활이 몇 해 동안 계속되자 이들은 새로운 삶을 꿈꾸며 탈출을 계획하게 된다. 철조망을 타고 넘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불가능에 도전한 것이다. 그들은 철조망의 이음새를 선택하였다.

8번 능형(마름모) 철조망은 굵기가 만만치 않아 사람도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벌리지 못할 정도인데 그들은 해낸 것이다. 아마도 최소 수개월 이상 사육사 몰래 야간을 이용해 교대로 철조망을 벌리는 작업을 했을 것이다. 작업의 고통도 컸겠지만 다수집단과의 갈등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이 더 컸기에 가능했으리라.

이렇게 도주한 원숭이는 이튿날 아침 10여㎞ 떨어진 마을 주민의 신고로 위치가 파악되었다. 사육사들이 포획 도구를 가지고 출동하였으나 재빠른 원숭이들은 산과 밭을 오가며 이들을 따돌리고 자유를 만끽했다. 원숭이들은 설익은 참외를 따 한 입 먹다 맛이 없다고 버리고, 또 먹다 버리곤 했다. 피해를 본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졌다.

사육사들은 기존의 방법으로는 포획이 불가능하기에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소수파를 가장 많이 괴롭힌 다수파의 한 마리를 가져와 탈출한 무리의 복수심을 이용하기로 했다. 문을 열어둔 큰 철망상자 안에 다수파 원숭이 한 마리를 가둔 작은 철망상자를 넣고 사육사들은 멀리 숨었다.

예상대로 탈출한 원숭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 큰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작은 상자의 철망 사이로 손을 넣어 자신들을 괴롭히던 원숭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사육사들은 줄로 연결된 큰 철망상자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해서 한 달간의 지루한 포획 작업은 끝났다. 이후 탈출했던 원숭이들은 뿔뿔이 헤어져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른 갈등도 클 것이다. 약자들이 받는 고통과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탈출한 원숭이들의 그것과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원숭이와 달리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내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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