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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열전24시] 한국정치 ‘상식’에 도전하는 두 정치 새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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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산 영도-민주 김비오 후보
길에 버려진 내 명함 보며 포기할까 생각도 수십 번
당선 위해 이념 바꾸기엔 제가 아직 젊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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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에 출마한 통합민주당 김비오 후보가 3일 청학동에서 한 유권자를 만나 지지를 호소하면서 포옹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3일 오후 7시. 부산 영도구에 출마한 통합민주당 김비오(40) 후보가 영선동의 남항시장을 찾았다.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자 한 상인이 “한나라당으로 나와야지! 여긴 민주당 갖곤 안 돼”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 후보는 “그래도 민주당으로 나와야죠”라며 어색하게 웃곤 다른 가게로 옮겨갔다. 그 상인이 혼잣말을 했다.

“참신 한데 안타깝다. 아무래도 한나라당이 될 텐데….”

정치인 김근태가 정말 좋아 4년 전 열린우리당에 가입했다는 김 후보는 이번이 첫 출마다. 모두가 미쳤다며 말린 길이었다. 낙선하더라도 젊은 정치인이 바른 길 가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끝끝내 고집해 출마했다.

원래 그의 집은 남구 대연동이다. 영도에는 5선을 바라보는 김형오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로 버티고 있다. ‘이왕이면 큰 고기를 잡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1월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두 달간 명함만 4만 장을 뿌렸다. 5분도 안 돼 길바닥에 버려지는 명함을 보며 포기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 먹기를 수십 차례. “아직 우린 젊지 않으냐”는 아내(최지선·35) 친구들의 위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날 오후 8시. 남항시장 입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목소리는 이미 쉰 상태. “낙선해도 재래시장이 활성화되도록 시민운동을 하겠다”고 한 그는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다”며 자신의 SM7 승용차 뒤에 타자마자 물을 찾았다.

김 후보는 한 대학생 덕분에 희망이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하도 명함을 안 받아 주기에 기억해 놨다가 네 번째 명함을 내밀었는데 또 받지 않더란다.

“‘젊은이가 정치에 무관심하면 당신이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고 몰아붙였어요. 그 친구도 ‘내가 원하는 정치인은 나오지도 않고, 나와도 당선 안 되더라’고 반박하더군요. 그렇게 말싸움이 벌어졌는데 나중에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더라고요.”

김 후보의 홈페이지엔 ‘태종대’라는 아이디로 ‘진정한 마음을 보여준 김비오 후보에게 ’란 글이 올라와 있었다.

4일 일정은 오전 7시 대교동의 인제의원 앞 사거리에서 시작됐다. 김 후보의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오후 9시에 있을 토론회 준비 때문에 2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했다. 간단히 거리 유세를 마치고 대교동 주변의 상가를 방문했다. 약국에 들어가 악수를 청하자 약사는 “저는 악수 안 하는데요” 라며 팔짱을 풀지 않았다.

“이 근방이 골수 한나라당 지지거든요.” 입술을 축인 김 후보는 다시 다른 시민에게 다가가 “저를 찍지 않으셔도 되니까 투표장에 꼭 나오세요” 하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일하는 김홍주(29)씨가 “한나라당은 대운하 때문에 싫다. 한나라당만 아니면 찍겠다”고 하자 김 후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오래도록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떨어질 후보를 왜 인터뷰하러 왔느냐”고 의아해하던 김 후보에게 “부산에서 정치할 거라면 한나라당이 낫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부산도 바뀔 겁니다. 당선을 위해 제 이념을 바꾸기엔 전 아직 젊지 않습니까.”

글=선승혜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광주 서갑-한나라 정용화 후보
아내가 며칠을 울더군요
그래도 출마 후회 안 해요
지역주의란 시대적 과제 정치인이면 짊어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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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정용화 후보가 3일 광주시 사직동 광주공원에서 열린 후보자 합동연설회장에서 유권자의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네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3일 오후 6시 광주 서구 농성동. 거리 유세를 하던 한나라당 정용화(44) 후보에게 한 할머니가 “잘 생겼다. 대통령 해도 쓰겄네. 근디 무슨 당이여”하고 물었다. “한나라당이요”라고 하자 할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곤 고개를 돌렸다.

유세가 끝나고 이번엔 치평동의 음식점들을 돌았다. 그를 맞는 사람들은 냉담했다.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어도 고개를 푹 숙이거나 무표정하게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술을 마시던 60대 시민이 “한나라당이여? 변화야 되겄지….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잉께”라고 말했다. “미우나 고우나 민주당입니까” 하고 그가 묻자 입을 닫는다. 하지만 돌아서는 정 후보의 등 뒤에 대고 “아직은 그래도 호남은 민주당이제”라고 말했다. 정 후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는 전남 강진 출신으로 광주 인성고·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 객원 연구원을 지냈다. 연세대 연구교수도 했다. 한나라당과의 인연은 이명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GSI(국제정책연구원)에 정책 전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다. 따지고 보면 정 후보는 정권교체의 공신이다.

정치를 하기로 결심하고 지난해 11월 8일 한나라당에 입당 원서를 냈다. 광주 출마를 결심한 날 친구들에게 알리자 친구들은 “네가 왜”라며 “이러면 안 된다”고 말렸다. 조선대에 있는 친구는 새벽에 전화를 걸어와 “오지 말라”고 했다. 아내는 사흘 동안 울면서 말렸다. 하지만 “정치인은 시대의 과제를 짊어져야 한다”는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왜 하필 광주인가.

“당선을 목표로 온 게 아니라 호소하러 왔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왔다. 광주가 변하면 대한민국이 변한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밤을 꼬박 새웠다. 광주로 내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호남인이니 태생적 과제가 있다. 호남 문제는 곧 한국 정치의 문제다. ”

이날 오후 9시 치평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주민자치협의회 대표들과 만났다. 이들은 10년째 쓰레기 소각장의 악취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 후보는 “저도 전에 소각장 옆에 살았다 ”며 “돈을 끌어올 수 있는 여당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대책위 상임대표 임형칠씨는 “여당이 1000억원을 가져온다 했는데도 안 했다”고 맞섰다. 정 후보는 한 시간 동안 메모하며 자리를 지켰다. 선거사무소로 돌아오던 길에 그는 “낮엔 미쳐서 돌아다니는데, 밤에 제정신이 돌아오면 나가떨어진다”며 밭은 기침을 했다.

4일 오전 7시20분 농성동 서구청 앞. 정 후보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1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1m83㎝의 키를 구부려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곤 한 팔로 주민의 어깨를 감싸 안자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서서히 말문을 열었다.

그에게 “광주 출마를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니요”란 대답에 딸려 나온 말은 이랬다.

“1월 말에는 양동시장 가면 몇 걸음 떼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둘러싸고 정부 욕하고 그랬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걱정도 해주고 ‘실망하지 마라’고도 한다. 변화한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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