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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CC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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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적인 프라이버시 보호 NGO 단체인 GILC(Global Internet Liberty Campaign)는 프라이버시를 4개로 나눈다. 정보·신체·통신·공간 프라이버시다. 공간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대표선수는 주거, 작업장,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폐쇄회로(CC:Closed-Circuit)TV다.

세계적으로 CCTV가 많은 나라는 영국이다. 420만 개에 이른다. 전 세계적으로 2000만 개의 CCTV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 세계 인구의 1%밖에 안 되는 나라에 전 세계 CCTV의 20%가 있는 셈이다.

CCTV 강국답게 기술도 계속 발전한다. 영국 경찰은 하늘을 나는 CCTV를 도입했다. 초소형 무인정찰기에 최첨단 CCTV를 장착해 500m 상공에서 고해상도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사람을 미리 판별해 내는 지능형 CCTV 기술도 시험 중이다. 수상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사람을 콕 짚어내는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나쁜 행동을 하면 말로 꾸짖는 CCTV도 있다. 실제는 카메라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감시원이 경고하는 것이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CCTV에 대한 국민 감정도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2005년 7월 런던 버스·지하철 테러 용의자를 잡는 데 CCTV가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다. 그 이후에는 범죄가 발생하면 당일 저녁 BBC 뉴스에 CCTV 화면이 공개될 정도다. CCTV 1대가 경찰 10명에 준한다는 말도 나온다.

일찌감치 소설 『1984』를 통해 ‘빅 브라더’라는 감시 시스템에 경고했던 조지 오웰의 나라가 영국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로 여겨질 정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CCTV가 각광받고 있다. 일산 초등생 폭행사건은 엘리베이터 안 CCTV 화면이 없었더라면 묻혀버렸을 것이다. 네 모녀 토막살인 사건 역시 아파트 현관 CCTV 화면이 범행의 큰 단서였다. 끔찍한 사건 이후 범죄 예방 차원에서 CCTV를 확대 설치하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들은 추가설치 계획을 내놓았다. 감시자 CCTV의 이미지가 어느덧 안전 수호자로 바뀐 것이다.

‘감시’는 오락의 주요 코드로도 자리 잡았다. 최근 신설돼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 코너는 연예인 커플을 가상의 신혼부부로 설정한 뒤 이들의 신접살림을 훔쳐보는 것이다. 이처럼 몰래카메라 양식에 사생활을 공개하는 리얼리티쇼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TV 장르이기도 하다.

사생활과 인격권 침해에 맞닿아 있는 감시 시스템이 어느덧 우리의 안전과 즐거움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피감시자를 자처하는 격이니, 참으로 씁쓸한 현대사회의 초상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