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천못할 시책 발표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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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슨 큰 사건이 터졌다 하면 소위 면피용 시책이 쏟아져 나오곤 한다.그랬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사라져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경험해 왔다.
이를테면 대구(大邱)지하철가스폭발사고나 아현동 가스폭발사고가났을 때 이를 근원적으로 방지하겠다는 취지아래 시설안전기술공단이 설립됐으나 별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삼풍대참사가 터지니까 재난관리법을 만들어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시책 이 나오는가 하면 아파트.대형건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강화하겠다는 정부발표가잇따라 나오고 있다.이미 분당.일산등 5개신도시의 아파트에 대한 안전진단 중간조사 결과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최근 구청책임아래 오는 9월말까지 서울시내 아파트.
연립주택등 59만가구에 대한 특별안전점검 및 진단을 하겠다고 발표했다.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건물에 대한 점검 및 진단을 어느 정도 그 분야에 관한 전문가가 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할 전문인력이 제대로 확보나 돼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알기로는 안전진단을 할 수 있는 기관 및 전문가들이 대한건축학회등 14개에 5천여명의 감리사 및 건축사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과연 이들이 9월말까지 59만가구의 연립주택및 아파트를 점검하고 진단할 수 있겠는가.
물론 입주자들이 건물에 문제가 있다고 진정하는 것을 주대상으로 한다 해도 59만가구를 2개월반만에 점검.진단한다는 것은 현재의 능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구청이나 전문기관들도 일상의다른 민원과 할 일이 산적해 있을터인데 안전점검 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일이다.
관(官)이 어떤 정책이나 시행계획을 국민에게 알릴 때는 실천가능한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발표하는 것이 신뢰를 얻는 길이다.
사고에 대한 여론의 화살이 무섭다고 해서 감당할 능력도 확실치않은 사항을 면피용으로 발표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쉽게 잊는다는 국민의 기억력을 이용해 실천도 못할,아니면 수박 겉하기식 정책을 내놓는 것은 나중에 국민의 원성만 사게 될 것이다.요즘같이 관(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높은 상황에서는 정책발표에 더욱 신중한 ■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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