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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한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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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울에도 아름다운 한강이 있지만 중국에도 한강이 있다. 한수(漢水)라고도 불리는 이 강은 길이가 1500㎞를 넘는 장강(長江)의 최대 지류다. 지금의 산시(陝西)성 서남부에서 발원해 후베이(湖北)성 서북부의 우한(武漢)에서 장강과 흐름을 합친다.

중국 13억 인구의 90.56%를 차지하는 한족의 명칭은 이 강과 연관이 있다. 한족이 그 정통성을 두고 있는 한(漢)나라가 이 강의 상류인 산시성 서남에서 발흥했기 때문이다. 진(秦)나라가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였다면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중국 문명의 줄기를 세운 왕조로 치부된다.

한과 대치했던 흉노를 비롯해 외부 세계가 한나라 사람들을 ‘한아(漢兒)’ ‘한인(漢人)’이라 부르면서 한족의 개념은 처음 역사에 등장한다. 그러나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한족의 개념을 하나의 집단으로 분류해 공식화한 것은 원(元)이다.

몽골이 세운 원은 당시의 중국인을 네 등급으로 나눈다. 가장 상위를 차지한 종족은 통치자 몽골이다. 다음은 색목인(色目人)이다. 서역 사람들로서 당시 원 왕조의 든든한 협력자다. 셋째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이 한인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한인이라는 범주에는 고려인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크게 보자면 장강 이북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몽골과 색목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을 모두 이 범주에 집어 넣은 것이다.

주의를 끄는 것은 그 다음 계급인 남인(南人)이다. 대개 장강 남쪽에 거주했던 모든 사람이 이 안에 들어간다. 원 왕조의 몽골족은 북방의 중국인과 남방의 중국인을 달리 분류했다. 같은 종족으로 보지 않은 셈인데, 당시 몽골인이 보기에는 남북의 중국인이 뭔가는 틀려도 많이 틀린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는 얘기다.

명과 청을 거쳐 신해혁명으로 탄생한 민국 시기에 오면서 이 한족이 중국의 주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등장하지만 실제 그 속내는 매우 복잡하다. 혈통·언어가 모두 제각각인 중국 남북의 사람들이 한데 묶이고, 심지어는 중국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도 그 안에 들어간다. 말하자면 한족은 혈통으로 말하는 개념이 분명히 아닌 것이다.

역사 속의 한족 문명은 포용적이다.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으며, 때로는 그것을 너그럽게 포용한다. 요즘 티베트를 대하는 중국의 민족주의가 거세기만 하다. 티베트를 영토에 두고 있다고 해서 그 문명마저 한족의 것으로 동화시키는 일은 옳지 않다. 티베트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그 문명을 보호하는 중국의 열린 자세를 보고 싶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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