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수영화산책>비포 더 레인-마케도니아의 삭막함과 허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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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발칸반도는 세계의 화약고로 불릴만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요즘 국제적인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보스니아사태도 해묵은 발칸반도의 분쟁과 관계가 깊다.종족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옛 유고지역의 갈등은 세계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지만 이곳뉴스가 터질 때마다 크로아티아.세르비아.마케도니아등 이름부터가헷갈린다.
그중 마케도니아는 기원전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대왕의 본거지로 유서깊은 고장이나 이젠 유고연방에서 분리독립한 신생 약소국일 뿐이다.이곳을 무대로 영화를 만들어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의대상을 따낸 작품이『비포 더 레인』이다.
이웃 알바니아와의 종족분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발칸반도의복잡한 사연만큼이나 이야기 전개가 여러 갈래로 엉켜 있다.더구나 작품성까지 지향하고 있어 영화의 재미는 떨어지지만 의외로 젊은층 관객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할리우드영화에 길들여진 미국에선 전혀 먹혀들 것 같지 않은 영화이고 보면 우리 관객수준도 상당히 고급취향이 된것 같다.
무엇보다 스토리의 전개와 구성이 이색적이다.서로 연결된 세개의 내용을 엮은 3부작으로 그 순서는 1→2→3이어야 정상인데2→3→1로 이어져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헷갈린다.거기에다 중간과정이 자주 생략되고 국면전환이 빨라 웬만큼 두뇌회전이 빠르지 않고서는 따라잡기 힘들어 영화보기 훈련코스의 텍스트로 삼을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순수한 사람됨은 쉽게 들어온다.젊은 수도사의 티없는 표정,미소를 머금으며 죽어가는 소녀,태연히 총을 맞으며 옛애인의 어린 딸을 도피시키는 사진작가등….그리고 삭막한마케도니아의 자연이 살벌한 종족갈등과 미묘한 대 조를 보이며 스산한 분위기를 일으킨다.
전반적으로 유쾌한 맛이 없고 씁쓸한 여운이 남는 영화다.사랑의 부질없음과 사는 것의 허무함이 깊숙이 깔려있다.등장인물 거의가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를 기다리며 졸음을 참는 얼굴들인데 주인공이 동족의 총탄에 맞아 허무하게 숨을 거두면 서 빗방울이떨어지기 시작한다.그래서 제목이 『비오기 전』인 모양이다.그러나 시원한 비가 내려도 발칸반도의 평화는 쉽사리 찾아올 것 같지 않다.
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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