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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몰락해 가는 드라마 왕국 … 해결책은 뭘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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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학에서 방송영상 전공 학생들을 가르칠 때 ‘드라마 만들기(How to make TV drama)’라는 다큐멘터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수업의 자료로 쓸 심산이었다.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에 참여한 작가·연출자·출연자·스태프 등을 심층 인터뷰하고, 촬영·편집 등의 세부 과정을 ‘낱낱이’ 취재한 4부작이었다.

SBS 수목드라마 ‘온에어’는 새로운 버전의 ‘드라마 만들기’다. 주된 배경이 방송사며 주인공의 직업도 배우·작가·PD, 그리고 매니저다. 다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전문인들끼리의 인간관계와 작품 선택을 위한 심리 과정이 ‘샅샅이’ 그려진다는 점이다.

학습용 다큐에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걸 드라마는 내밀하게 가르쳐준다. 심하게 평하면 다큐는 겉핥기에 그친 감이 있다. 작가와 연출자가 어떻게 가려지고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어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캐스팅되는지를 놓친 것이다. 방송사와 매니저는 왜 그토록 스타를 향해 자존심을 반납하는지, 왜 시청률이라는 괴물에 납작 엎드려 살아야 하는지를 다큐는 관대하게 넘겼다.

‘온에어’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보면 로버트 프루스트의 ‘불과 얼음’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그만큼 냉정과 열정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간다. 드라마가 드라마틱하려면 배경도 중요하지만 인물이 강해야 산다는 걸 노련한 제작진이 모를 리 없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전문직 드라마로 치장한 멜로라고까지 폄하한다. 그들은 이미 병원에서 사랑한 이야기, 법원에서 사랑한 이야기, 궁중에서 사랑한 이야기에 식상한 사람들이다.

‘온에어’ 홈페이지에 드러난 기획의도에는 비교적 건강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큰 글자만 모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21세기 대한민국은 드라마왕국이다. 둘째, 드라마왕국은 죽어가고 있다. 셋째, 왜 드라마를 위기에 빠뜨린 사람들은 반성하지 않는 걸까. 아마도 셋째 질문에 드라마는 용감하게 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가 드라마를 위기에 빠뜨렸느냐는 질문은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누가 정치를, 누가 경제를, 누가 학교를 위기에 빠뜨렸느냐. 그 나라 정치인들의 수준은 그 나라 유권자의 수준이라는 말이 근접 가능한 대답일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위기를 맞은 것이 옳다면 한국 시청자가 늘 그렇고 그런 것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온에어’에는 극중 드라마가 나온다. 제목이 ‘티켓 투 더 문’이다. 달은 멀리 있지만 달을 사모하는 마음이 진정이라면 달도 언젠가는 화답할 것이다. 솔직히 소재와 배경이 다를 뿐 모든 드라마의 한결같은 주제는 사랑이며 권선징악이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면 창작 에너지가 고갈된 셰익스피어(조셉 파인즈)가 점술가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해결책은 사랑에 빠지라는 것이다. 방송을 만드는 생산자 그룹이 시청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새롭고 재밌고 유익하기까지 한 드라마를 볼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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