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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현장에서>대구.경북-官權개입시비 사라진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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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틀동안 대구.경북 지역을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돌아봤다.그 결과 6.27선거는 우리 헌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 것으로 짐작되는 몇가지 징조가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관권개입및 그로 인한 부정시비가 사라졌다는 점이다.유세장이나 개인연설회를 막론하고 관권선거를 들먹이는 후보나 운동원,시민단체의 항의나 언급이 없었다.
대다수 무소속 후보들이『무소속이라고 선거운동을 하는데 핸디캡을 느끼는 것이 없다』고 이구동성이다.
선거부정을 감시하는 여러 곳의 시민단체들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대구의 한 진보적 대학교수는『대학의 학기말 시험을 고려하더라도 학생운동권이 이에 대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을 보면 이번 선거에서 관권시비가 사라진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구의 한 고위공무원은 정부의 선거중립의지에 덧붙여『누가 될지도 모르는데 잘못 했다가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라고 솔직하게 토로했다.경북내륙지역의 한 군청 주사보는『옛날처럼 위에서 여당에 유리한 지시를 내리면 우리 공무원들이 데모를 할 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시대의 변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다만 일부 공무원들이 선거후 자신의 영달을 위해 특정 후보에게 밀착하는 현상은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앞으로 이같은 사적인 유착폐해를 어떻게 최소화하느냐가 하나의 과제로 부상하는느낌이었다.
다음의 변화는 여권프리미엄의 질적인 저하다.사실상 소멸직전으로 드러나고 있다.과거 여당은 방대한 관변조직,지역유력층이 망라된 후원하에 거대한 당원의 공룡조직을 가지고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지금은 관변조직은 법으로 묶여 있고,유력층은 여당지원의 흉내를 내는 정도다.『대구의 한 유력 상공인은 겉으로는 여당후보를 지지하지만 표는 다른 사람에게 찍는다고 공공연히 말하더라』(대구시 고위공무원)는 형편이니 그의 여당지 원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러니 공조직인들 제대로 움직일 리가 없다.다 그렇다는 것은아니지만 과거 여당당원으로 가입했던 동기가 이문때문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영천의 한 유지는『먹을 게 없어지고 있는데 누가줄을 서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결과는 당장 이번 경북지사선거에서 드러나고 있었다.도대체여당지사선거운동을 하는 움직임이 있는지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도민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시.군당이나 여당후보들은 자기 선거에 바빠 도지사선거는 뒷전이었다.유력지사 후보가 안동시장을 돌면서 자기소개를 하자 『시의원에 출마했는냐』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경북 어느 곳을 가도 지사후보들이 누구인지 모르는사람이 대다수였다.
물론 이런 두개의 현상이 전국적인 보편성으로 볼 수 있느냐는더 검증해야 할 문제다.왜냐하면 대구.경북은 30여년 이상의 정권창출지라는 자부심과,당사자들은 부인하는 태도지만 舊정권의 수혜지대로서 현정권에 들어와 섭섭함을 당했다고 앙앙불락하는 곳이기 때문이다.공무원들을 비롯,舊여권세력의 집결체인 유력층과 당조직이 안 움직일 수 있는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무소속 강세현상이 나타나는 것만 봐도 이른바 이 지역정서는 읽혀진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오늘까지 전국적으로 관권개입을 비난하거나,여당프리미엄이 작용한다는 사례나 증후가 거의 안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는 하나의 보편성으로 우리 앞에 다가서는 고무적 현상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지역마다 활성화된 후보초청토론회의 도입은 공직후보자의 자질검증에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그 백미는 TV토론이다.공당의 추천을 받은 한 광역후보가 등록전의 TV토론회에서 죽을 쑤는 바람에 등록을 포기해야 했다는 뒷얘기는 선거문화의 새 지평을 여는 한 지표다.
아쉬운 점은 역시 돈선거의 풍토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대도시선거및 광역단체장선거는 이 점이 거의 사라진듯 했다.그러나 단위가 작은 기초단체장을 비롯해 특히 기초의원선거는 여전히 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인상이었다.경북 한 중소도시의 시의원후보 몇몇은 가구당 5만원씩의 현금박치기를 하고 있었고,20일 풍산읍에서 열린 안동시장후보 합동연설회에선 식권이 발견됐다.
그럼에도 광복후 실시된 51번째(보궐선거.재선거 제외) 선거에서 비로소 관권부정선거로부터 해방되고 있다는 징조는 우리 선거문화의 한 단계 격상을 예고하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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