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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진단>對北 쌀지원 북경회담 이뤄지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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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일성(金日成)사망후 최초로 이뤄지는 당국간 공식접촉으로의 남북 쌀회담은 서울-평양의 탐색전과 물밑 접촉,그리고 일본 연립여당의「등떼밀기」등 크게 3단계 과정을 거쳐 성사됐다.
쌀 문제가 최초로 남북관계 이슈로 등장한 것은 지난 3월이다.당시 일본은 北日 수교협상 재개를 위해 연립여당 방북단을 평양에 파견했다.북한과 일본은 이때「일본쌀 1백만t제공」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후 이같은 北日 합의내용 은 일본측이 방한(訪韓),청와대에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측에알려지게 됐다.그후 쌀문제는 정부 수뇌부에서「당연히 한국쌀이 먼저 가야 된다」는 것으로 정리됐다.
쌀문제를 놓고 남북이 본격적인 탐색전에 들어간 것은 지난 4월이다.한국의 對日견제에 밀려 일본이 약속한 쌀 지원이 늦어지자 김용순(金容淳)은 자신의 오른팔 전금철(全今哲)을 비밀리에급파했다.
베이징(北京)에 파견된 전금철은 駐중국 북한대사관에 진을 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물밑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하더라도 그는 조선족 사업가인 흑룡강성민족경제개발총공사의 최수진(崔秀鎭)과 베이징주재 NH K특파원,그리고 북한의 무역상사인 삼천리총회사는 물론 재미교포 실업가등을통해 서울측에 신호를 보냈다.
『물밑 접촉을 갖자』는 전금철의 신호는 한국무역진흥공사(KOTRA)의 북방팀 H실장을 통해 우리측에 수신됐다.그후 이같은남북접촉은 바로 우리측 駐베이징대사관의 최승(崔昇)공사와 북한의 某인사 사이에 지속됐다.정부의 한 고위 소식통 은『KOTRA는 초기 단계에서 메신저 역할만을 한후 빠졌으며 전금철은 단한번도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말해 북한이 이 물밑접촉에 제3의 인물을 내세웠음을 암시했다.
물밑에서 진행된 남북 비밀접촉은 일본 연립여당의「등떼밀기」를계기로 물위로 떠올랐다.北日수교를 서두르는 일본 연립여당은「쌀」을 둘러싼 일련의 움직임을 일본언론에 흘렸다.속셈도 단단히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6월초에 들어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는「北日-쌀교섭 비밀 커넥션」기사를 터뜨렸다.국내에서는 中央日報가지난 11일「남북 비밀 쌀접촉」을 최초로 보도했다.
특히 북한은 지난 15일부터는 김용순-가토 고이치 자민당 정조회장간에 연결된 팩스를 통해 일본 언론에「남북 차관급 쌀회담」사실을 흘렸다.정부는 이같은 언론보도가 나가자 난처한 표정을지었다.당시 정부는 공식접촉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북측답변을 기다리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이같은 남북 물밑 접촉을 알고있던 사람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청와대실무자.안기부특별팀.현지 실무접촉 책임자등 5~6명에 불과했다.羅통일부총리가 이같은 사실을 귀띔받는 것도 지난5월26일 전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내 16일 밤 베이징으로부터 회담준비 OK사인이 날아왔다.정부는 이에따라 17일 오전10시를 기해 청와대와 통일원에서기자브리핑을 통해 『이석채(李錫采)재정경제원 차관을 남북 쌀협상 대표로 베이징으로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 崔源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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