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원자재쇼크] 중국산도 껑충 … 물가 비상구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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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 작가인 전애숙(38·경기도 부천시)씨는 18일 김치를 담그려고 장을 봤다. 지난해 이맘때 다섯 포기를 담그는 데 든 돈이 1만1000원이었는데 올핸 세 포기 담그는 데 2만원 들었다. 묵은 가계부를 뒤져 보니 채소값이 이만저만 뛴 게 아니었다. 올해 세 포기에 6000원 든 배추는 지난해 다섯 포기에 5000원이었다. 한 개에 500~700원 하던 무는 1200원, 쪽파 한 단은 1000원에서 2480원으로 뛰었다. 오이(세 개 1000원→2000원)나 삼치(한 마리 800원→1800원)도 두 배 넘게 비싸졌다. 전씨는 열심히 저축하는 ‘짠순이’에 속한다. 그런 그가 긴축을 했는데도 이달 들어 월 생활비가 210만원으로 10만원 늘었다. 불어난 식비 때문이다. “영화관 안 가고, 외식 줄이고, 승용차도 세웠는데 장바구니 물가를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푸념했다.

원자재 값 파동은 이제 산업 현장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느덧 가계부에도 주름살을 드리우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로 다섯 달째 3%를 넘겼다. 통계청 관계자는 “물가 조사 후에 라면 값이 올라 실제 체감 물가는 수치를 웃돌 수 있다”고 말했다.

◇피부 물가가 오른다=“지난해엔 기름 값이 하도 올라 승용차를 운전할 때 계기판을 자주 들여다봤는데, 올 들어선 점심 먹으러 나가기도 무서워졌어요.” 서울 서소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5)씨의 말이다. 밀가루 값이 뛰면서 자장면·칼국수 같은 대중 음식 값이 많이 오른 때문이다.

공산품 가격도 들썩인다. 대형 마트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값싼 자체 브랜드(PB) 출시 경쟁을 벌이면서 당장에 공산품 가격을 올리진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급하다. 롯데마트 상품운영팀의 구창모 과장은 “가격을 마냥 붙잡아 두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납품업체들이 원가 상승을 이유로 단가를 올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제품 가격도 꿈틀거린다. 값싼 중국산은 지구촌 곳곳의 피부 물가를 확 끌어내린 일등공신. 중국에서 생활 잡화를 수입하는 문형오씨는 “지난해 말 70위안 하던 커피잔 세트가 두어 달 만에 77위안으로 뛰었다”고 전했다. 전반적으로 납품가가 10~15% 올랐고, 조만간 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국제무역연구원의 정환우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임금·물가·원자재 값이 올라 중국산 제품의 값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가 떨어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유가 상승은 한 달 뒤 생산자물가에, 두 달 뒤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 유가와 원자재 값이 오름세라 연관된 물가는 당분간 상향 곡선을 그릴 전망이다. 이 연구소의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예전 원자재 파동 때는 일부 품목만 오르거나, 가격 상승의 충격을 산업 현장에서 웬만큼 흡수해 생활경제에 직결되지는 않았다”며 “최근 유가·곡물가·원자재가가 동반 상승하고, 환율마저 불안정해지면서 파장이 소비자 가계에 어려움을 준다”고 말했다.

◇소비자 최대 고충은 물가=LG경제연구원은 1995년부터 생활경제고통지수라는 걸 측정해 발표해 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체감 실업률을 더한 수치다. 높을수록 경제적 고통이 크다. 지난해 9월 8.5였던 고통지수는 매달 올라 1월엔 12.2로 3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연구원의 배민근 선임연구원은 “지난 10년간 고통지수는 주로 고용의 영향을 받았는데 지난해 4분기부터는 물가의 영향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기대지수와 평가지수 등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지수는 뚝뚝 떨어진다. 지갑을 굳게 닫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대형 마트의 쌀 판매는 이달 들어 20% 늘었다. 외식을 줄이려고 집에서 밥을 지어 먹는 가정이 는 것으로 유통업계는 본다. 승용차 운행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주차장 컨설팅 업체인 파크존 관계자는 “올 들어 일반권(시간당 요금제) 고객이 전년 동기 대비 15~20% 줄었다. 정기권을 해지하는 고객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도 관리비가 올라 요금을 할인해 줄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가계 소비를 줄이는 건 조만간 한계에 부닥치리란 분석이 나온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상당수 중산층 가정이 부동산 대출의 원리금을 상환하느라 가처분소득이 많이 준 상태다.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물가 오름세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이 앞길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8.7%나 뛰었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4.3%, 유럽은 3.2% 올랐다. 지구촌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다.

◇특별취재팀=양선희·장정훈·이철재·손해용·한애란 기자 ,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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