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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원자재값 1년 만에 50%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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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양돈 농가들이 16일 정부에 돼지고기를 수매해 달라고 긴급 요청했다. 치솟는 사료값 때문에 돼지를 기를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양돈협회는 “사료값 상승으로 사육비는 뛴 반면 돼지고기 가격은 떨어지면서 양돈농가는 한 마리를 길러 팔 때마다 평균 5만4000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며 “이달 안에 정부가 수매하지 않으면 양돈 농가의 도산이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1500마리를 키우는 신모(60)씨는 “사료값은 지난해 40% 이상 올라 요즘 한 달에 400만~500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료용 곡물 값은 올 들어서도 계속 오르고 있다. 옥수수는 1월 말 시카고선물시장에서 부셸(25.4㎏)당 5달러였던 것이 13일 5.7달러로 올랐다. 한 달 반 만에 14%나 뛴 것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도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가인 두바이유가 100달러를 넘어섰다. 14일(현지시간) 100.18달러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국제 금값도 14일 뉴욕상업거래소의 4월 인도분이 한때 온스당 1009달러(마감 가격은 999.5달러)까지 올랐다.

원유·곡물과 더불어 철광석·석탄 등 광물 값도 함께 치솟고 있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 원자재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9.4% 올랐다. 원자재는 지난달 수입물가지수(22.2%)를 끌어올린 주범이다. 수입물가지수 상승률은 1998년 10월(25.6%) 이래 9년4개월 만의 최고치다. 지난달 생산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6.8% 올랐다. 2004년 11월(6.8%) 이후 최고치다.

◇원자재 파동 확산 중=속수무책인 원자재 가격 때문에 대기업의 일부 공장이 생산을 멈췄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납품가 갈등도 벌어지고 있다. 레미콘·펌프카 업체의 파업에 일부 건설현장에선 공사가 중단됐다.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는 나프타로 만드는 BTX(벤젠·톨루엔·자일렌) 4개 공장 중 제2공장이 7개월째 가동 중단 중이다. 이 회사 황해동 홍보팀장은 “공장 가동을 멈춘 건 69년 공장 설립 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다른 공장들도 생산량을 기존의 70% 수준까지 줄였다. 석유화학제품의 주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최근 사상 처음 t당 900달러를 넘어섰다. GS칼텍스·한국바스프·동부하이텍도 생산 물량을 줄였다. 위기 타개를 위해 울산 지역 석유화학업계는 최근 ‘석탄을 공정연료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저유황 벙커C유에 비해 석탄은 79% 싸지만 환경오염 때문에 사용이 금지돼 있다.

기름값이 생산현장에 반영되는 데는 보통 한 달 남짓 걸린다. 유화업계에서는 추가 감산과 제품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부산항 컨테이너부두 운영사들은 컨테이너 야적장 크레인의 연료를 경유에서 전기로 바꾸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신감만·신선대 부두가 각각 30억원을 투자해 6월까지 변전소를 설치하고 일부 크레인 설비를 바꿀 계획이다. “시설을 바꾸는 데 비용이 만만찮게 들고, 변전소 설치에 야적장 공간 활용도가 떨어지지만 고유가를 견딜 수 없다”는 게 항만공사 측 설명이다.

◇정부, 손 쓸 여지 많지 않아=현대경제연구원은 16일 최근 곡물 값 급등세는 단순히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국제적 충돌 등 정세 불안을 가져올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식량난을 더욱 부채질해 탈북 주민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원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저개발국의 기아와 난민이 늘어나면서 국지적인 충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 평균 유가를 80달러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달 90달러를 넘어섰다. 정부는 올해 경상수지 적자를 70억 달러로 예상했지만 1월에만 26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무역수지도 지난해 말부터 적자행진이다. 올 1, 2월에만 49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물가도 정부가 예상했던 3.3%를 훌쩍 뛰어넘어 1, 2월에 각각 3.9%와 3.6% 올랐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경차 혜택 확대나 승용차 요일제 등 유류 절감 방안을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은 달러 약세와 중국·인도의 원자재 수요 증가, 그리고 투기 등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어서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선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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