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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대학 힘 모아 ‘재팬 MIT’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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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16면

수퍼 대학원 설립을 주도 중인 ‘협동 산학관’의 가지타니 마코토 이사장 도쿄=권석천 기자

일본 대학가가 ‘소자화(少子化)’의 물결 앞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소자화는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각 가정의 자녀 수가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몇 년 안에 입시생 전부가 대학에 들어가는 ‘전입(全入)’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일본 대학들이 도심으로 U턴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 여건이 잘 갖춰진 곳으로 대학을 옮겨야만 그나마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란 판단이다.

일본 수퍼 대학원 프로젝트

지난해 11월 외신 보도를 통해 전해진 ‘수퍼 대학원’ 추진도 소자화의 큰 흐름 속에 있다. 기본 아이디어는 서로 경쟁해 온 대학들이 힘을 합쳐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기르자는 것. 한 대학 안에서도 화합이 어려운데 다른 대학들과 머리를 맞대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하게 된 과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수퍼 대학원 설립을 주도해온 ‘협동 산학관’의 가지타니 마코토 이사장을 만났다. 가지타니 이사장은 “(수퍼 대학원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 내야 한다는 당위성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평상시 같으면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인구 감소로 대학의 존재 자체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수퍼 대학원 설립과 같은 과감한 결단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온 것입니다.”

협동 산학관은 전국 60여 개 대학과 연구기관들로 구성된 교류 조직. ‘산(産)’은 기업, ‘학(學)’은 대학, ‘관(官)’은 정부를 의미한다. 2004년 4월 국립대의 독립 법인화를 계기로 설립됐다. 대학 스스로 벌어서 자립하라는 법인화의 방향에 따라 산학 협력을 통한 연구 활성화 필요성이 절박하게 다가온 것이다.

2010년 설립 목표인 수퍼 대학원에 참여하는 10개 대학 가운데 9개가 신슈(信州)대·덴쓰(電通)대·아키타(秋田)대·기타미(北見)공업대 등 지방 국공립대인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는 주오(中央)대 한 곳만 사립대다. 각 대학이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를 공유하고 비용을 분담함으로써 일본의 MIT를 만든다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인접 지역 대학과 학점 공동 인정제도 등의 협력 사례는 있었으나 전국 단위로 대학이 제휴하는 것은 처음이다. 가지타니 이사장은 “지금까지 교수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연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더 이상은 용납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학 연구도 이제는 산업 현장의 수요에 맞춰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퍼 대학원은 각 대학이 우위 분야를 집중 육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가령 한랭 지역에 있는 기타미 공대의 경우 눈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 개발 연구가 활성화돼 있어요. 이런 분야들을 모으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전문가들의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준을 세워서 각 대학의 참여 분야를 정할 계획이에요.”

제휴 기업이 제시하는 프로젝트에 해당 분야 교수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게 된다. 가지타니 이사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이는 만큼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며 “남에게 구속되기 싫어하는 ‘인종’인 대학과 교수를 설득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이 얼마나 참여할지도 알기 어렵다. 기업 참여가 저조할 때에는 수퍼 대학원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산업계에 필요한 실용적 연구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선은 작은 규모로 출발할 생각이다. 석·박사 과정 학생을 20여 명가량 선발한다. 이들은 교수들과 함께 프로젝트 팀에 들어가 실용 연구를 몸으로 익히게 된다. 한국과 중국 등에서 유학생도 받을 예정이다.

캠퍼스는 기업들의 이용이 쉽도록 도쿄에 두기로 했다. 사무국과 실험동 건물에 제휴기업 사무실·숙박시설 등을 갖출 계획이다. 가지타니 이사장은 “산학관 회원 대학들에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며 “대학들의 관심이 많아 참여 대학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문부과학성은 수퍼 대학원 설립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꿔 뒷받침해 주기로 했다. 대학이 입학 정원 감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학교 간 통폐합이나 공동 운영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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