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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기쁨 <53> 지중해의 숨은 보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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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39면

이스키아 섬이 어디냐는 질문에 ‘나폴리에서 고속 여객선으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리조트’라고 답할 수 있다면 이탈리아를 상당히 잘 아는 사람이다. 2007년 4월 나는 이곳을 방문하려고 나폴리 항구로 향했다. 매표소 직원이 “카프리 섬이 아니고 이스키아 섬인 거죠?”라고 재차 확인하려 했다. 대부분의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은 푸른 동굴로 유명한 카프리 섬을 찾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산지에서 훌륭한 생산자가 열정을 쏟아 만들고 있는 근사한 화이트 와인을 소개하고 싶다.

이스키아 섬은 둘레가 32㎞인 작은 섬으로 온천과 특수 진흙을 이용한 스파가 유명한 숨은 관광지다. 항구에서 차를 타고 섬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을 20분 정도 오르면 이 지역 최고의 와이너리 ‘카사 담브라(Casa D’Ambra)’에 도착한다. 오너인 안드레아 담브라는 입구에서 나를 맞았다. 대체적으로 쾌활하고 말이 많은 남부 이탈리아인과 달리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약간 수줍음을 타는 진지한 인물이었다.

카사 담브라의 포도밭은 표고 500m 지대에 있다. 급사면이라 기계가 들어갈 수 없어 사람이 손으로 수확을 하는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몇 군데 엄선한 농가에서 포도를 사들여 와이너리로 옮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포도 알이 포도 자체의 무게에 눌려 공기 중의 야생 효모와 반응해 발효가 시작될 우려가 있다. 이를 막고자 트럭 짐칸에는 드라이아이스를 깔고 10분 이내에 농가에서 와이너리로 포도를 옮긴다. 무더운 지중해 가운데 섬이기에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이스키아는 지각변동으로 해저가 융기하면서 생긴 섬이다. 포도밭에는 ‘투포 베르데’라는 녹색 화강암이 많이 눈에 띈다. 손으로 쥐면 부스스 부서질 정도로 약하다. 해저 미네랄을 듬뿍 담고 있는 투포 베르데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 ‘프라시텔리(Frassitelli)’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생육 과정에서 포도는 자연스럽게 미네랄을 흡수하고, 이 포도로 만든 프라시텔리에서도 미네랄 맛이 나기 때문이다.

카사 담브라의 포도밭은 고지대에 있어 병충해가 없다. 덕분에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안드레아 담브라는 프라시텔리에 사용하는 토종 포도 품종 비앙코렐라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절대 나무통에서 숙성하지 않는다. 와인은 프랑스 샤블리를 떠올리게 하는 깨끗하고 날렵한 신맛과 과일 자체의 순수한 맛을 지녔다. 차분하고 튀지 않는 부드러운 플로랄 부케는 안드레아 담브라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와이너리를 방문한 뒤 항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성게 스파게티와 신선한 새우·오징어·문어를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소스로 맛을 낸 해산물과 함께 프라시텔리를 마셨다. 해산물에서 나는 자연의 소금기와 프라시텔리에 담긴 미네랄이 가진 소금기가 근사한 마리아주를 그려냈다. 그날도 나는 와인에 한껏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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