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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신문화사이버펑크>6.사이버섹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비키 베네트(21)는 보스턴의 작은 서점 「브룩스」의 여종업원이다. 그녀는 가끔 인터네트의 성(性)경험담을 늘어놓는 토론장에 자신의 전자우편 주소와 함께 의견을 띄워 놓곤 한다.
여러번 전자우편을 통한 접촉 끝에 4월말 보스턴에 인접한 케임브리지의 작은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코걸이를 하고 엉덩이에까지 트인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요즘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이름은 론이다.
비키는 론을 실제공간이 아닌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만 만난다.비키는 그 이름이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른다.그의 모습도 본 적이없다.단지 론이 컴퓨터 통신망에서 처음 만났을 때 『1백85㎝정도의 키에 금발,약간 마른 체격』이라고 자신 을 소개한 것으로부터 그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물론 그의 목소리를들은 적도 없다.컴퓨터 화면에 떠오르는 자막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해 왔다.
『처음 인터네트의 한 토론장에서 론을 알게 됐죠.그와 의견이아주 잘 맞았어요.곧 다른 채널을 통해 둘이서만 얘기를 나눴어요.이내 그에게 이끌려 그의 집으로 갔죠.그리고 거기서 사랑을나눴어요.』 물론 그렇다고 실제 그들이 만난 것은 아니다.비키의 설명에 따르면 그저 컴퓨터 화면에 론으로부터 「내 집에 가자」는 메시지가 떠올랐고 자신은 「좋다」고 대답했다는 것.
그 이후도 컴퓨터 화면에 서로의 대화를 나타내는 글만이 나타났을 뿐이지만 비키는 이같이 막연한 컴퓨터와 자판을 통한 대화에서 실제와 같은 느낌을 얻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컴퓨터상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가 화를 내며 씩씩거리는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어요.론이 처음 내게 「키스할게」라고얘기했을 때 짜릿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죠.그와 함께 한 모든 것이 마찬가지예요.』 비키는 사이버섹스가 폰섹스와는 다르다고 한다.저질스런 얘기만 무턱대고 늘어놓는 싸구려 폰섹스가 몸을 파는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셈이라면 사이버섹스는 마음에 맞는 상대와의 데이트라는 것이다.
비키는 론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혹시 론이 여자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비키는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존재가 중요할 뿐 실체는 어떻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비키에게 있어 론은 단지 비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성적 욕망을 풀기 위해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찾아낸 대상에 불과하다.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만난 「사이버 연인」은 론이 세번째다.
『전에는 진짜 남자친구를 사귄 적도 있었죠.하지만 귀찮아요.
때때로 불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어차피 그들이나 론은 짧은 기간의 데이트 상대일 뿐이에요.론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헤어지면 사이버 스페이스의 수많은 사람중에서 또 하나 찾으면 그만이죠.애정 따위는 없어요.』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체험을 현실처럼 느끼는 데 익숙한 사이버 펑크족들은 비키처럼 「유령 같은」존재와 보통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성관계를 한다.그러나 눈부시게 발전하는 컴퓨터.가상현실 기술은 일반인들까지 사이버섹스의 장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미 컴퓨터가 만들어 낸 가상의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며 가상의 성행위까지 갖게 되는 초보적인 사이버섹스 CD롬이 등장한지는 오래다.이 게임에서는 등장인물의 비위를 잘 맞추지 않으면사정없이 데이트를 거절당하기도 한다.이같은 사이 버 섹스 CD롬들은 등장인물과 실제와 다름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장점 때문에머지않아 포르노 비디오를 몰아낼 전망이다.
사이버 펑크 영화의 전형인 『데몰리션 맨』『엠마뉴엘7』에는 등장인물이 두뇌에 영상과 자극을 전달해 주는 장치를 이용해 사이버 섹스를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이같은 수준의 사이버 섹스는아직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하는 가상현실 기술은결코 이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님을 예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사이버 섹스는 몸의 부분부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는 얇은 옷을 입고 머리에는 3차원 영상을 전달해 주는 장치(헤드마운트글라스)를 쓰고 행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포르노 비디오는 단지 청소년의 성범죄 등에 영향을 미쳤을뿐이지만 사이버 섹스는 현재의 사회구조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모든 감각,나아가 감정까지도 두뇌의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방법이 다르더라도 두뇌에 이르는 자극이 같다면 느낌과 만족은 같은 것이지요.게다가 가상현실에 의한 사이버섹스는원하는 대상과 원하는 시간에,원하는 장소에서 성 병감염의 위험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결국 사이버 섹스는 전통적인 혼인제도와 가족제도,나아가 인간관계를 파괴할 것입니다.』사이버 펑크 전문가 하워드 라인골드(44)의 말은 머지않아 사이버 섹스가 초래할 사회의 격변을 드러내고 있다.
[보스턴=蔡奎振.權赫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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