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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요한의 나! 리모델링] 정신비만에 시달리는 현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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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증권가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K씨(34·여)는 주의집중력과 판단력의 저하, 그리고 만성 피로감을 호소하며 찾아왔다. 올해 들어 자료의 의미를 잘 읽을 수 없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세 개의 신문을 샅샅이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종일 자료와 모니터를 붙잡고 씨름한다. 일하는 중에도 30분 단위로 업무메일을 확인하고 수십 통의 통화를 한다. 상담 중에도 휴대전화가 수시로 울린다. ‘이렇게 바쁜 사람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 같았다.

이는 그녀만의 문제일까? 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지 주의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내원하는 젊은 직장인이 늘고 있다.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주의력 결핍의 문제가 없던 경우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 증세를 듣다가 깜짝깜짝 놀란다. 나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하나의 일을 하다가 끝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늘 무언가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신문이라도 살펴봐야 마음이 놓인다. 그럼, 이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이며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비만은 현대인들에게 내린 풍요의 재앙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비만을 해결하기도 전에 또 다른 비만에 직면해 있다. 바로 ‘정신비만(mental obesity)’이다.

정신비만 역시 과잉의 비극이다. 우리의 뇌가 처리할 수 없을 만큼의 과도한 정보와 자극이 주입되기에 나타난다. 그것은 때로 수동적인 노출일 때도 있지만 정보폭식과 함께 진행된다. 세상의 정보량에 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량이 현격히 부족하다는 주관적인 정보결핍감이 정보폭식의 원인이 된다. 즉, 정보결핍감이 정보불안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정보폭식을 낳게 된다. 하지만 정보폭식 자체는 지식과 지혜가 되지 못하기에 정보결핍감은 더해가며 결국 정신비만의 악순환은 반복된다.

정신비만으로 인한 증상은 무얼까? 앞에 말한 내용도 있지만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주의집중력이 약해진다. 정보와 자극의 과잉으로 인해 우리는 점점 깊게 생각하는 습관을 잃어가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에 따라 마음은 강한 자극에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둘째는 실행력이 약해진다. 수많은 정보 앞에 무엇이 진실이고 의미가 있는지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실행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자료의 수집과 분석에만 열중할 뿐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아내지 못한다. 즉, ‘분석마비(analysis paralysis)’상태에 빠지게 된다. 셋째는 경쟁력이 약해진다. 수많은 정보를 저장만 하고 있을 뿐, 영양가 있는 지식을 만들지 못하므로 지적 열등감에 시달린다. 자, 그럼 정신비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멘털 다이어트 요령

■멘털 필터를 만들자. 멘털 필터는 자신의 호기심과 열정이 농축된 ‘키워드’를 말한다. 이 여과기를 통해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자. 관련 정보를 통합하고 의미를 파악해 자신만의 지식으로 저장하자.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키워드는 무엇인가?

■넓이보다 깊이를 먼저 추구하자. 깊이를 갖출 때만이 정보소비자에서 벗어나 정보편집자 혹은 정보생산자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는 욕심은 정신비만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힘을 키우자. 이를 위해서는 정보의 영양가를 따지는 습관과 정보단절의 시간이 필요하다. 영양소는 없고 칼로리만 높은 정크푸드처럼 영양가 없는 조각뉴스와 단편적인 정보에서 벗어나자. TV나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한 달에 한 권씩은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인문교양 서적을 읽자.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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