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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까지 나서 “나가라” 요구 … 공기업 낙하산 인사 바늘방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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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2일 오후 지식경제부 산하의 한 공기업 사장실은 싸늘했다. 말을 꺼내기도 힘든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날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코드 틀린 사람들이 전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있는 것은 곤란하다”고 한 말이 전해지면서부터다.

11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에 이어 이날 상급 기관인 부처의 장관이 퇴진을 유도하는 말을 하자 공기업 사장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의 사장과 감사의 임기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임원추천위원회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같은 절차를 거쳐 선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천위원들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과거 정부가 특정인을 밀면 추천위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했다. 2006년 증권거래소 감사를 뽑을 때 한 추천위원은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사퇴하기까지 했다. 공모제가 낙하산 인사를 합리화하기 위한 제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사실상 노무현 정부에 충성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예컨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17대 총선 때 부산에서 출마한 사람이 주요 공기업의 사장으로 임명됐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들도 공기업의 사장자리를 꿰찼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거나 자문위원이었던 사람도 공기업 사장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이과수폭포 해외 외유로 물의를 빚은 공기업 감사들도 대부분 정치권 출신이었다.

이들이 해당 공기업을 이끌 만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스스로 약점이 있으니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눈감아 주거나 노조에 끌려 다닌 적도 많았다. 한 공기업의 직원은 “낙하산으로 내려온 감사는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데 보냈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하는 일도 없는 사람에게 거액의 봉급을 주는 것을 보면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같은 금융 공기업의 수장도 대부분 노무현 정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고위 공직자 출신이라 낙하산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정부는 공기업을 ^자체 수입비율이 50% 이상인 공기업 ^자체 수입 비율이 50% 미만인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구분한다. 공기업은 한국가스공사·한국전력공사 등 24개이고, 준정부기관은 77개, 기타공공기관은 197개로 총 298개다. 여권이 파악한 교체 대상은 12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교체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공기업이 정부의 일부라는 것이다. 정부가 어머니라면 공기업은 자식이다. 이질적인 구성원이 가족을 이루기 힘든 것처럼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공기업의 수장도 새 인사로 채워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책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성대 박영범 교수는 “지난 정권에서 상당수 공기업 대표와 감사들은 전문성보다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임명됐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나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과천 관가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공기업 사장과 감사에 대한 퇴진 압력은 다음달 총선 이후 더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총선 이후 정부가 본궤도에 오르면 공기업 경영진도 새 정책 방향에 맞게 짤 필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실용을 중시하는 현 정부에서 공기업 사장을 무조건 퇴진시키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숭실대 오철호 교수는 “과거 전력을 따질 게 아니라 옥석을 가려 능력이 검증된 사람에게는 계속 일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윤·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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