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후보 여론조사 문제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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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론조사에 응해 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달 어느 일요일늦은 오후였다.서울시장후보로 거명되는 몇 사람의인기도,정당 지지도,그리고 現대통령의 평가 등 주로 정치여론조사의 내용이었다.마침 우리나라의 정치여론조사,특히 질문은 어떻 게 하는가가 궁금해서 여러 모로 한번 분석해 보려던 터라 차근차근 질문에 응했다.젊은 여성조사원은 준비된 질문지를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한 질문에서 세 정당의 지지도를 묻다 대답이 적극적이지 않으니까 그러면 인물을 보고 투표하느냐고 묻는다.설문을만들 때 지켜야 할 원칙중 중요한 것은 질문의 카테고리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그러니까 정당을 보고 찍는지, 아니면 인물을 보고 찍는지를 먼저 묻고,그 다음에 정당이면 셋중 어느 정당,또 인물이면 능력.됨됨이 등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4년 전 중앙의 어느 일간지는 투표기준의 순서로 「사람 됨됨이」「능력」「주위평가」「공약」「지연(地緣)」등을 물은 적이 있고,같은날 또 다른 일간지는 「인물」「공약」「친여야성(親與野性)」「안면」등을 분석결과로 내놓은 적이 있다.여기 서 의아하게생각되는 것은 질문 카테고리야 관심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왜 공약을 보고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각각 7.8%와 31.6%로 두 신문간에 큰 차이를 보였는가다.
이유는 한쪽이 인물에 관련된 여러 질문을 던짐으로써 공약에 대한 관심을 희석했기 때문이다.바로 카테고리간의 균형을 지키지않은 것이다.
80년대말 이후 여론조사 붐이 일었으나 그 오류는 위에 지적한 것 이외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이제 깨끗한 정치를 위한법적.제도적 장치는 마련됐다고 합니다.이번에 통과된 정치개혁법이…선거혁명을 이루는데 얼마나 도움이…』라는 식 으로 유도성 질문을 떡 먹듯이 한다.대통령이「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는가라고묻는 것과「정치」를 잘하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과는 지지도에서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적정용어의 선택이 쉽지 않은 것이다.통일후의 정치체제를「혼합절충형 」이라고 하면 대강 무슨 뜻인 줄 알지만 너무 모호하다.
또한 카테고리의 균형말고도 그 구성은 망라적이면서 동시에 배타적이어야 한다.투표요인이 되는 것은 모두 물어야 하는데 어떤질문에서는 정당을 빼거나 또는 인물을 빼는 것조차 눈에 띈다.
그리고 경제안정과 물가안정은 배타적이라기보다 경 제가 물가를 포괄하는 유(類)개념이다.
4년전 지방선거의 예상 투표율에서도 조사마다 큰 차이를 보인것도 표본의 크기.직업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등 응답자집단의 비(非)대표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조사의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보도자의 왜곡도 심각한 문제중 하나다.조사의 핵심내용과 다른 제목을 뽑기를 다반사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전화조사 이야기로 돌아가서 또 잘못된 것으로는 시장후보로 현직 총리를 물어본 것이다.전직도 아니고,또 우리가 프랑스정치패턴을 따라가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현직 총리를 시장후보감이냐고 물으면 중앙집권적 사고에 익숙한 유권자는 순간 당황하게 된다.전화조사자는 응답자의 직업을 묻고도『할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로 조사를 끝냈다.
***原則지키는 조사를 요즘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단체장 후보에 대한 지지도 조사가 매일 지면을 장식한다.선거전략을 세우는데 필요하겠고,또 유권자도 흥미로워 하니까 각 언론매체는 서슴지 않고 후보여론조사를 실시하지만,문제는 앞서 지적한 여러 원칙을 얼마 나 정확하게 지키며 세련된 조사를 하고 있느냐다.
만일 예와 다름없이 원칙에 어긋나는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면 여론을 오도하고 유권자를 기만하는 것과 다름없다.더욱이 무응답자가 반이 넘어 대표성이 지극히 의심스러운 분석결과를 제시하고있으니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여론조사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야할 것이다.각 조사자나 의뢰자도 절제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민주정치는 여론정치라는 등식(等式)이 성립한다.
〈서울대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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