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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怪疾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불과 얼마전 인도의 페스트 유행으로 떨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전에 이번에는 아프리카 자이르에서 에볼라란 무서운 괴질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에 모두들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지난 수십년동안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전염병,특히바이러스성 출혈열이 많이 발견되었다.라사열.마르부르크병.에볼라병은 아프리카에서 나타났고,사비아.후닌.마추포등은 남미에서,신증후 출혈열의 원인인 한타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 서 발견되었다.지금 전세계적인 대유행을 몰고온 에이즈는 아프리카가 기원일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출혈열이나 에이즈처럼 아프리카나 남미의 정글로부터 튀어나온 바이러스가 새 괴질의 원인인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2년전미국에서 출현한 한타 바이러스 폐증후군이나 20년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재향군인병처럼 반드시 모든 괴질이 정글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전염병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세상에 없던 병원체가 갑자기 새로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대개의 경우 다른 동물에 있던 바이러스가 우연한 계기로 사람에 들어와 무서운 병을 유발하거나 기존 병원체가 유전자 변이를 통해 무서운 독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병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또한 생태학적 변화와 이에 따른 사람과 동물간의 접촉증가,사람의 면역 변화,생활 양식변화와 인구 이동,동물실험 특히 원숭이 사용의 증가,교역증대에 따른 사람과 동물.매개체의 이동증가가 모두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과 확산에 기여하는 요인들이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모른다.아마도 쥐 등설치류에 있던 바이러스가 생태학적 변화로 인한 접촉증가로 원숭이나 사람사회에 뛰어 든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갑자기 인간사회에 뛰어든 이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간의 전염병 으로서 정착하느냐는 이 바이러스의 성격과 이에 대한 사람의 대응에 달려 있다.새로운 병원체가 사람에 들어오면 오랜 시간에 걸친 공동의 진화과정을 통해 새로운 균형과 공존에 도달하게 된다.새로운 바이러스는 점차 독성이 약한 쪽으로 선 택되고,사람은 바이러스에대한 저항력이 큰 쪽이 선택되어 살아 남기 때문이다.
영리한(?)바이러스라면 새로운 환경에 재빨리 적응해 사람에게최소한의 피해를 주면서 증식하는 길을 터득하지만 만일 여기에 실패하여 감염된 사람 대부분을 죽인다면 결국은 바이러스도 같이따라서 죽게 돼 정착에 실패할 것이다.
이 병은 잠복기가 짧고(약1주,최대3주),발병하면 증상이 명백하며,급속히 악화돼 사망하기 때문에 환자가 많은 사람에게 전염시키기는 어렵다.긴밀한 신체접촉을 통해서만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공기전염이나 매개곤충이 없기 때문에 멀리까지, 많은 사람을감염시킬 수도 없다.
따라서 의료인이나 가족처럼 환자를 접촉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 고무장갑.가운.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의료기구등을 철저히소독하여 사용한다면 무서운 대규모 유행으로 번질 가능성은 매우적을 것이다.
그러나 에볼라 병이나 바이러스에 대해선 아직 연구가 미진하기때문에 예측에는 불확실한 요소도 있다.예컨대 상당수의 인근지역주민들은 아무 증상없이 이 질병에 걸렸다가 회복되었다는 증거가나타나고 있다.만일 이러한 증상없는 감염이 많다면 이들 조용한감염자들로부터 모르는 사이에 질병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으나 우리가 이 병의 확산을 저지할 지식과 방법을 가지고 있는 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현지에서의 확산방지와 적절한 검역을 통해 외국으로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서울대 교수.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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