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명박 ‘공직 머슴론’이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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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민이 힘들어도 여러분의 봉급은 나가고, 1조원 들어갈 사업에 2조~3조원 들어가도 책임질 사람 없다.” “재정 위기가 오고 경제성장은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도 여러분은 감원이 되나, 봉급이 안 나올 염려가 있나.”

대한민국에서 이런 귀족 같은 삶을 누리는 ‘여러분’이 누구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그 여러분을 몰아붙였다. 공무원들 얘기다. 이 대통령은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경쟁 않는 공무원, 책임지지 않는 공무원들을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공무원에게 머슴의 자리로 내려오라고 요구했다.

“말은 머슴이라고 하면서 과연 국민에게 머슴의 역할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머슴은 주인인 국민보다 일찍 일어난다.” 이 대통령이 기대하는 ‘공직 머슴론’은 아침형+현장형+창의형 공직자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현장에서 문제와 해답을 발견하며, 관습 깨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무원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규제 전봇대’ 뽑기만큼이나 시원한 맛이 있다. 팽팽 돌아가는 기업 같으면 20분이면 처리할 일을 20일 지나도록 책상 서랍에 넣어 두고선 그럴듯한 구실 대기를 능력인 양 착각하는 공무원이 어디 한둘이던가. 마침 발표한 숭례문 방화사건 수사결과에서 문화재청과 서울 중구청, 중부소방서, 시청 관계자들의 근무태만이 드러났다. 안으로 게으르고 밖으로 생색내기에 능한 공무원 사회의 현 주소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국장이든 과장이든 실력있는 사람한테 귀를 기울였다. 4년 만에 계장에서 국장으로 파격 승진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때 성공시킨 공무원 경쟁체제를 중앙정부에 적용해 철밥통을 깨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질책만으로 공무원이 쉽게 움직이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제도와 시스템으로 공무원을 경쟁케 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지만 공무원 자리를 자격 갖춘 외부 민간인에게 훨씬 많이 개방할 필요가 있다. 게으른 공무원은 1차 교육시키고 그래도 안 되면 직권면직으로 퇴출시키는 ‘울산시 실험’도 검토할 만하다. 공무원의 신분보장만 되뇔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