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기업 개혁 원칙 벌써 흔들리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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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만수 기획재경부 장관이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 지분은 정부가 갖고 경영을 민간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기업을 소유하되 경영만 민간에 위탁하는 싱가포르의 테마섹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장관은 “공기업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매각하느냐보다 우선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先)효율-후(後)민영화’를 시사한 것으로 들린다.

작은 정부와 공기업 개혁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큰 원칙이다. 또 공기업 개혁은 정권 초기에 강력히 밀어붙이지 않으면 실패를 반복했던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이런 미묘한 시기에 나온 강 장관의 언급은 혼란된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공기업 개혁 같은 중대한 사안은 금융위원장 등 정부 관련 부처와도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아직 신임 금융위원장이 공식 부임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강 장관이 제대로 협의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내용을 불쑥 꺼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혼란된 인식은 혼선을 빚는다. 강 장관의 말 한마디는 정책 기반을 허물 수 있다. 벌써 새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가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무늬만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계속 행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쓸데없는 오해까지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공기업의 집요한 저항과 반발을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다.

민간과 경쟁하는 공기업부터 민영화시키고, 효율이 떨어지는 공공부문은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이는 지난 대선 때 확인된 국민적 의사다. 정부가 지분을 갖고 경영만 민간에 맡기는 것은 이미 김영삼 정부 때 추진했다가 실패한 방식이다. 소유권을 민간에 넘기는 것은 민영화의 본질에 속하는 문제다. 물론 강 장관의 걱정처럼 민영화 이후의 소유권 처리나 재벌 비대화는 세심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을 겁내 공기업 민영화라는 대원칙을 허물 수는 없다. 꼬리 때문에 몸통까지 흔들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