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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대지주였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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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지난해 말 서울에 사는 A씨가 경기도청에 ‘조상 땅 찾기’를 신청해 경기도 연천에 있는 163필지 23만9000m2(7만2000여 평)에 이르는 숨은 조상 땅을 확인해 화제가 됐다. 언론을 통해 ‘로또’ ‘대박’으로 불리며 조상 땅 찾기에 성공한 사례가 심심찮게 보도되자 ‘이참에 혹시 나도?’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조상 땅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경기도청 토지정보과에 따르면 관련 상담이 2006년 3000건에서 지난해 5000건으로 늘었다. 김용재 경기도청 토지정보과 담당자는 “조상 땅 찾기를 신청했다 땅이 없는 걸로 나오면 옛날에 엄청 많았던 우리 땅이 다 어디로 갔느냐며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술자리에서 땅 얘기하다 내친 김에 한꺼번에 몰려와 신청서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설 직후 조상 땅 찾기 신청자가 부쩍 늘었는데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땅 얘기가 오갔기 때문”이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행정자치부 지적정보센터 연도별 정보제공 실적에 따르면 1996년 665명이 열람을 신청한 이후 99년 1538명, 2000년 8619명, 2004년 1만5355명, 2007년 5만8654명으로 2000년대 들어 매년 그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용어설명

무주부동산공고 무주부동산은 미등기 부동산 또는 멸실된 등기를 회복하지 않은 부동산을 말한다. 다시 말해 등기상 주인이 없는 땅을 일컫는 것. 정부는 1970년대 이후 국유재산법 제8조에 의해 무주부동산공고 절차를 거친 다음 상당수의 미등기 부동산과 등기미회복 부동산을 국유로 소유권 보존등기를 했다.

농지개혁법 헌법에 따라 농지를 농민에게 적절히 분배함으로써 농가경제 자립과 농업생산력 증진을 이루고 농민 생활 향상과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을 기할 목적으로 1949년 제정된 법률. 이 법에 따라 국가는 지주소유의 농지에 대해 보상하고 분할을 거쳐 여러 소작인에게 양도하도록 조치했다. 농지를 분배 받은 소작인은 5년간 농사를 지으며 토지 비용을 상환하면 소유권을 가질 수 있었다.

95년 9월부터 행자부에 의해 시행된 조상 땅 찾아주기는 지난해까지 누적 신청인원 수가 20만3768명에 달했다. 이는 조상 땅 찾기 민원인과 일반 민원인 수가 함께 집계된 수치다. 하지만 전국 지자체를 통해 일일이 확인한 결과 조상 땅 찾기 신청인원의 누적 수는 15만 명에 달했다.

여기에 행자부를 통해 신청한 인원 수를 합치면 20만3000여 명 중 일반 민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남도청의 경우 조상 땅 찾기 신청인원수가 2001년 289명, 2004년 478명에서 2005년 2365명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후 2006년 1851명, 2007년 3435명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영신 전남도청 토지관리과 담당자는 “2005년 5월 한시적인 특별조치법(부동산소유권 이전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공포됐고, 2006년부터 2년간 시행되면서 이때 조상 땅 찾기를 신청한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조상 땅을 찾은 경우 특별조치법에 의해 쉽게 등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신청인이 몰린 것이란 설명이다.

특별조치법은 소유권 보존등기(미등기 부동산에 최초로 하는 등기)가 되어 있지 않거나 땅을 산 뒤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지 않은 부동산에 대해 간소한 절차를 거쳐 등기할 수 있도록 제정된 한시적인 법이다.

지난해 『조상 땅 찾는 법』을 변호사와 공저로 펴낸 법무법인 성우 서동호 국장은 “평소 등기하려면 매도인의 인감, 매도계약서, 등기권리증 등 서류가 있어야 이전등기가 가능하지만 특조법 시행기간에는 이러한 서류 대신 보증인 보증서와 부동산 소재 관청의 확인서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등기가 가능해진다.

부동산 관련 특조법이 60년 이후 수 차례 시행됐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남의 땅을 가로채 등기하는 등 부실 등기가 종종 발생해 왔다”고 말했다.

행자부 지적팀 장성욱 사무관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지적공부(地籍公簿)를 전산화했다. 그 과정에서 자료를 보니까 갑자기 조상이 죽고 후손은 그 땅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조상 땅 찾아주기에 나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지적공부는 지번, 지목, 면적 등 토지와 관련한 정보를 수록한 것으로 토지대장, 임야대장 등을 일컫는다.

장성욱 사무관은 “무료로 서비스하다 보니 따로 책정된 예산이 없어 수년째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안 되고 있다. 금방 끝날 수 있는 자료 검색에 한두 시간이 걸린다. 요즘 사람들 초고속인터넷에 익숙해 5분만 기다리면 짜증을 낸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땅 찾기 했다가 안 나오면 직원에게 화풀이하고, 토지 브로커가 후손을 상대로 조상 땅이 있다고 장난치면 그 욕을 업무담당자가 다 먹는다”고 답답해 했다.

해마다 땅 찾는 사람 늘어나

지적전산망을 통해 조상 땅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상속인 소유가 되는 건 아니다. 행정중심도시특별법 제정 이후 충남 연기군의 땅값이 뛰어오르자 C(40)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청에 조상 땅 찾기를 신청했다.

그 결과 충남 연기군에 9만 평의 땅이 증조부와 조부 소유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둘러 상속등기를 하려고 준비하던 중 도청에서 연락을 받았다. 이미 다른 사람이 그 땅의 등기를 내기 위해 신고가 되어 있다는 것.

조씨가 현장을 찾아가자 여러 사람이 경작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오래전에 소유권이 이전됐어야 할 땅이지만 6·25를 전후해 등기를 못한 사실을 알았다. 시세 15억원의 땅을 포기하지 못한 조씨는 억울한 마음에 소송을 냈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 20년간 거주하다 입국한 홍모(65)씨는 행자부에 조상 땅 찾기를 신청해 1938년 당시 조부의 이름으로 된 용인 땅을 찾았다. 그 후 상속등기까지 마친 상태에서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이 들어왔다. 그 땅은 이미 20년 전부터 다른 사람이 점유해 지금껏 사용하고 있었던 것.

그는 과거 홍씨 조부로부터 땅을 매수한 뒤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후 홍씨 조부를 찾지 못해 등기를 하지 못했다. 소송에서 홍씨는 패소했고 상속등기 비용만 날렸다.

이 외에 무단점유자가 특별조치법을 이용해 소유권 이전등기를 한 경우, 미등기 토지를 정부가 무주부동산 공고를 거쳐 국유재산으로 소유권을 이전한 경우, 지적공부에 이름이 있지만 6·25 때 등기부가 불탄 후 토지 소유자가 사망 또는 행방불명되면서 등기를 회복하지 않아 제3자에게 넘어간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조상 땅을 찾았다 해도 실제로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기도 광주에서 조부 소유의 임야를 찾았지만 국가가 1996년 소유권 보존등기를 마쳐 소송을 해야 했던 사례도 있다.

정모(50)씨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조부의 땅을 찾아 얼마 전 등기를 마쳤다. 정씨 조부는 49년 제정된 농지개혁법에 의해 지주였던 원 소유자의 땅을 국가로부터 분배 받아 농사를 지으며 5년간 토지비용을 상환 완료했다. 그 후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지 않은 채 방치됐던 땅을 40년이 지나 정씨가 상속등기한 것.

그런데 조상 땅 찾기를 통해 할아버지 땅인 줄 알았던 원 소유자 후손은 정씨가 최근 등기를 낸 사실을 알고 이를 의심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조상 땅 찾기를 통해 땅을 확인한 사람들이 뒤늦게 실망에 빠지거나 소송에 휘말리게 되는 원인은 지적공부와 등기부를 관리하는 곳이 행자부와 법원으로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성욱 사무관은 “소유권 이전 등 변동이 발생해 등기가 되면 그때그때 지적공부를 정리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지적공부와 등기부상 소유주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정리 과정에서 누락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부분이 조상 땅을 찾으면 자기 것으로 오해하는데, 지적정보센터에서 조상 땅을 알려주는 건 과거 당신 조상이 이런 땅을 갖고 있었다는 정보를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등기소에서 진짜 조상 땅으로 등기가 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 뒤 상속등기를 해야 자기 땅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땅을 찾았지만 재산상 별로 가치가 없는 경우도 많아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B씨는 얼마 전 1963년 사망한 조부 명의의 땅 세 필지(총 560m2)를 찾았지만 세 필지 모두 지목상 ‘도로’로 되어 있었다. C씨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조부 소유 땅 세 필지를 찾았지만 지목이 ‘도로’와 ‘구거’로 되어 있었다.

자료조사비만 챙기고 사라져

서동우 국장은 “소유주가 땅을 방치해 자연발생적으로 도로가 됐거나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도로로 되어 있다면 땅을 찾아도 별 실익이 없다. 만약 국도나 지방도 등 공도로 국가가 무단 점유하고 있는 상태라면 보상받을 수 있지만 그 액수 역시 얼마 되지 않는다. 구거는 도랑을 말하는데 그걸 누가 돈 주고 사겠느냐. 그러니 재산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련의 상황을 악용해 토지 브로커들도 활개치고 있다. 조상 땅 찾기를 미끼로 사람들에게 접근해 수백만원의 자료조사비만 가로채고 사라지는가 하면, 땅을 찾은 뒤 수익을 5 대 5 또는 6 대 4의 비율로 챙기는 등 ‘한몫 잡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

정부와 지자체 전산망으로 땅을 찾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미련을 버리지 못해 토지 브로커에게 현혹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도청 김용재씨는 “어디에 당신 조상 땅이 있다며 서류를 들고 접근해 오는 브로커를 믿지 마라. 소유권을 증명하는 것과 관련 없는 서류인 경우도 많고, 지세 납부 자료 등 토지 관련 문서에 조상 이름이 있다 해도 소유권에 있어 등기부가 우선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속기 쉽다”고 충고했다.

조상 땅 찾기에서 유의할 점은 또 있다. 행자부 지적전산망은 상속권자만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조부 땅을 찾고자 하는데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손자는 상속인이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땅을 무단 점유한 채 20년이 지났거나 무단 점유 후 등기를 취득했다면 소송을 통해 소유권자를 가려야 하는데 이때 확실한 증거 자료가 없으면 땅을 되찾기 쉽지 않다.

또 주민번호등록제도가 실시된 1968년 이전에 조상이 사망했다면 주민번호가 없기 때문에 이름으로 찾는데 이 경우 지적정보 자료 조회 범위는 조상의 거주지 또는 토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2~3개 읍·면·리·동을 대상으로만 신청이 가능하다. 지적전산망은 한글로 확인되기 때문에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다.

조상 땅 찾으려면…

상속인만 열람 신청 가능

조상 땅 찾기는 지적전산자료, 주민등록전산자료 등을 통합 구축해 행자부가 운영하는 지적정보센터를 통해 이뤄진다. 각 시·도와 시·군·구청 지적 관련 부서를 직접 찾아가 조상 땅 찾기 열람청구서(신청서)를 제출하면 센터 전산망을 통해 그 자리에서 땅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신청은 상속인만 할 수 있는데 신청서와 함께 사망자 제적등본 및 호적등본을 첨부해야 한다. 상속인이 여러 명일 경우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단 1960년 이전에 사망한 사람의 재산은 당시 민법에 따라 장자 또는 호주에 상속됐기 때문에 장자 외 나머지 형제들은 상속권이 없다.

조상이 60년 이후 사망했을 경우 배우자와 직계비속 모두에게 상속권이 있다. 상속인이 제3자에게 신청을 위임하려면 인감증명서와 함께 위임장을 제출해야 한다. 조상 땅 찾기에 드는 비용은 무료다.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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