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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공천 드라마’엔 키워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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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음달 9일 치러지는 18대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나라당의 물갈이는 아직 잠잠하다. 지역구 공천 확정자가 3일 현재 104명이지만 현역 지역구 의원 탈락은 단 한 명이다. 비례대표 의원 중엔 4명이 공천 경쟁에서 패했다.

이번 공천 심사를 놓고 당내에선 “공천심사위원들이 너무 계파 안배에만 신경 쓰는 것 같다”는 불만까지 나온다.

대선 승리의 여파 때문인지 물갈이에 대한 경고도 아직은 미약하다. 과거 이맘때와 비교하면 큰 차이다. 물갈이 비율은 차떼기 대선 자금으로 위기라고 했던 16대 총선이 31%, 탄핵 역풍으로 맥을 못 추던 17대 총선이 36.4%였다. 그래서 당내에선 역대 총선 물갈이를 화제로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①김현철이 주도한 15대 ‘물갈이 공천’=1995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민자당(신한국당의 전신)은 참패했다. 15명의 광역단체장 중 5명만 당선했다. 이듬해 열릴 총선에 대한 위기감 때문에 범여권 차원의 총선 준비팀이 꾸려졌다. 공천 작업을 주도한 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였다. 컨셉트는 ‘물갈이 공천’이었다. 공천 실무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국 각지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들을 찾는 것이었다. 선거에서 승리할 사람을 찾기 위해 여론조사 기법도 도입했다. 현역 의원 물갈이가 낳을 파장을 우려해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방에서 밤샘 비밀작업을 했다.

이렇게 해서 민중당 출신의 김문수·이재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앵커 출신 맹형규 의원 등 40대 개혁 인사들이 속속 영입됐다. 이들 중 20여 명은 현재까지 살아남아 당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②김윤환 탈락시킨 16대 ‘세대 교체 공천’=한나라당 내에선 총선 물갈이 하면 아직도 ‘2·18 공천 학살’을 떠올린다. 2000년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당내 민정계 중진인 김윤환(당시 5선), 민주계 중진인 이기택(당시 부총재)·신상우(당시 국회부의장)씨가 잇따라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때 공천의 원칙은 철저한 ‘구시대와의 단절’‘세대 교체’였다.

공천 작업을 주도했던 윤여준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은 “공천 탈락자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구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라 물러나 달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빈자리는 새로 영입된 오세훈(현 서울시장)·원희룡 등으로 대표되는 386 인사들이 채웠다.

한 명 한 명이 계파와 지역을 대표하는 거물 공천 탈락자들은 집단 탈당, 민국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 지역구 1석, 비례대표 1석의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반면 세대 교체 공천의 결과 한나라당은 과반에 가까운 1당이 됐다.

③공천심사위와 17대 ‘시스템’=김문수 경기지사가 위원장을 맡은 2004년 17대 총선 공심위엔 비중 있는 외부 인사가 대거 포진했다. 작가 이문열씨와 안강민(18대 공심위원장) 전 서울고검장, 강혜련(18대 공심위원) 이화여대 교수 등은 “한나라당이 뚜렷한 보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 위원들이 중심이 된 공심위는 박종웅·하순봉 당시 의원 등 27명의 현역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물갈이 여론에 밀려 양정규·현승일·김진재(작고) 당시 의원 등 27명은 아예 불출마를 선언했다.

물갈이 비율은 역대 최고였다. 공심위는 공천 막바지엔 당시 자신들을 임명한 최병렬 대표에 대해서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책임을 물어 공천을 주지 않았다. 한 중진 의원은 당시 “최 대표가 자신이 만든 공심위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다. 대신 방송인 출신인 한선교·이계진 의원 등을 영입, 지역구에서 당선시켰다. 공심위라는 조직을 통한 공천이 처음 도입돼 당에선 이를 ‘시스템 공천’이라고 불렀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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