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문 세계의 자정능력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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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학문 세계에 사기와 표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험이나 조사자료를 조작해 있지도 않은 성과를 만들고, 남의 논문이나 저작을 자신의 것처럼 포장해 써먹는 일이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고 있다.

자연과학 분야에선 KAIST의 김태국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지, 2006년 네이처 케미컬바이올로지에 발표했던 논문이 조작으로 드러났다. 현미경 사진의 배율을 조작해 성과를 과대 포장했다고 KAIST가 지난달 29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 마무리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터라 충격이 더욱 크다. 하지만 자연과학 분야는 그나마 나아 보인다. 적어도 대학에서 스스로 문제를 밝혀내고 정화하는 기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회과학 분야는 그마저 의심스럽다.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다른 학자의 책을 상당 부분 베껴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제자의 석사논문과 거의 동일한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행이었느니, 발표 선후가 달랐느니 하는 변명성 발언들로 덮고 가기엔 입맛이 쓰다. 이에 앞서 2006년 김병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이 표절 문제로 물러난 터다. 그런 큰 홍역을 치르고도 배운 게 없었다는 얘기다. 사기나 표절이 발각되면 학계에서도, 공직에서도 발붙일 수 없는 것이 선진국의 불문율이다. 불과 3일 전 미국에선 부시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티머시 고글랜이 지방 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남의 글을 표절한 사실이 밝혀지자 곧바로 물러났다.

많은 이가 한국 사회과학 분야의 자정 기능을 의심한다. 공직에 발탁되지 않았다면 과연 학계 스스로 표절 의혹을 파헤쳐 드러냈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들이 학계 극히 일부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학계 스스로 동료의 의혹을 사전에 밝혀내 공직이든 교직이든 발을 못 붙이게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야 학계도 살고, 이 나라도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