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펼치는 총성 없는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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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한국과 중국의 선박 수주량을 보면 막상막하다. 2007년 상반기 선박 수주량 수치를 보면 중국이 한국을 바짝 뒤쫓고 있으나 7~9월에 다시 한국이 치고 나갔다. 지난해 1~9월의 성적을 보면 중국이 점유율 33%, 한국이 43%를 차지했다. 같은 시기 일본은 13%의 점유율을 보였다.

▶LNG운반선. 지난해 국내에서 개발된 세계 최초·최고의 신기술 제품으로 조선 3사인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이 개발했다.

처음 일본 해운회사에서 한국에 선박 건조를 발주한 것이 90년대 말이었다. 그러나 단 10년 만에 한국의 기술력은 일본과 비슷해지고, 중국의 스피드는 한국을 넘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조선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10년 내 건조능력을 2300만t(2006년 대비 60% 증가)까지 늘릴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각 성 정부의 집계자료를 보면 건조능력이 4000만t을 돌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을 따돌리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1등인 한국도 지지 않는다. 세계 최대의 현대중공업은 10번째 도크를 건조 중이지만 도크를 사용하지 않고 빌딩을 지을 때처럼 육상에서 배를 건조하는 육상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세계 2위의 삼성중공업은 물에 뜨는 도크와 3000t을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크레인선을 동원해 바다에서 배를 건조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의 성적이 부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 조선회사들이 대형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롭게 도크를 만든다? 말도 안 돼.” “높은 산이 있으면 뒤에는 깊은 계곡도 있는 법.”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답이 나온다.

일본 조선업계는 1970년대 석유 위기와 80년대 ‘플라자 합의’라는 두 번의 어려움을 연이어 겪었다. 눈물을 머금고 설비를 반감하고 인원도 3분의 1로 감축했다. 다시 한 번 그런 어려움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트라우마가 이유의 하나다.

그것뿐 아니다. 일본이 웅크린 사이 많은 투자를 한 한국은 일본을 왕좌에서 끌어내렸다. 반도체 역전과 같은 패턴이다. 한 조선사 중견간부는 “실수였다. 당시에 투자를 확 늘려 감히 한국이 넘볼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고 반성했다.

그럼에도 일본 조선업계는 살아남는 길에 대해 자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경제산업성은 사세보중공업의 설비를 산업유산으로 지정했다. 250t 크레인은 대정시대(일제시대) 도입한 영국제다.

‘유산’이라 할 만큼 오래된 장비를 사용한 이 회사의 2007년 9월 중반 추산 영업이익률은 12.2%. 번쩍번쩍한 최신설비로 무장한 삼성의 영업이익률은 5.2%(2007년 3분기)였다. 사세보중공업의 영업이익률이 삼성보다 훨씬 높다. 이러한 일본 조선업의 힘에는 세 가지 비밀이 있다.

첫째는 제조업(모노쓰쿠리)에의 ‘선택과 집중’이다. 고부가가치 선박이 아니다. 일본이 선택한 것은 벌크선과 중형 탱커다. 벌크선이라 하면 신흥조선소의 입문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벌크선이 전체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사양을 통일한 표준선을 연속으로 건조하고 있다. 벌크선은 구조가 단순한 표준선이라 기본설계가 똑같고 손이 두 번 가지 않아 도크의 회전율도, 생산성도 올라가게 된다.

LNG선이나 VLCC도 만드는 종합백화점 미쓰이조선도 독자 개발한 표준선 ‘56BC’(5.6만t 벌크) 120척을 수주했다. 세계 고객의 니즈를 종합해 높은 레벨로 통일한다. 이것이 미쓰이 브랜드 전략이다.

둘째 비밀은 재료가격이 낮다는 것. 후판(선박용 두꺼운 철판)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 후판을 스팟 가격으로 수입하고 있다. 일본제와 스팟 가격을 비교하면 스팟 가격이 10~20% 비싸다. 선박은 재료 비율이 70%에 달하기 때문에 이 격차는 크다. 임금도 지금은 한국이 높다. 일본 조선사 한 간부의 말이다.

일본 부활의 비결은 효율화

“97년께 한국 조선업 임금은 일본의 60~70%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역전돼 대기업 초임도 한국이 높다.”

셋째 비밀은 원래 큰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지만 하게 되면 극한의 효율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주가가 2500엔까지 갔던 나무라조선소. 2001년 나무라 사장은 ‘투자는 나쁠 때 하라’는 선대의 말을 기억하고 투자했다. 나무라는 채권을 발행, 확보된 유동성으로 투자를 늘렸다. 또 구조조정을 통해 종업원 퇴직금을 40% 줄였다.

이와 함께 15억 엔을 추가 출자해 자회사를 만들었다. 나무라조선소는 지금 7척의 건조능력을 갖게 됐다. 일본의 조선업은 생산도, 투자도 효율이란 말을 뼛속까지 깊이 새기고 있다.

이러한 강점이 있지만 일본이 이미 저만치 앞서간 한국·중국을 역전할 수 있을까. 해운계의 명문 일본우선이 처음 중국에 신선박을 발주한 것은 2003년이었다. 이런저런 의견이 많았다. 도대체 엔진이나 프로펠러가 움직이기나 할까. “마지막엔 내가 책임을 지겠어.” 회장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결론이 났다.

그렇지만 불안감은 있었다. 중국 배의 사고 전력을 조사해보니 사건이 많았다. 일본우선은 해당 조선소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인 베테랑 감독관을 스카우트했고 모두 7~8명의 감독관을 보냈다. 발주했던 케이프 사이즈 2척은 지난해 무사히 보내졌지만, 중국에서 최고의 조선소라 하더라도 기술력에 대해서는 신경을 써야 한다.

가와사키중공업의 조선 자회사 가와사키조선의 사장은 4~5년 전 다롄의 유력조선소를 견학했다. 일본은 VLCC를 50만 시간에 만들지만 당시 다롄의 조선소는 500만 시간이 걸렸다. 그는 “용케도 300만 시간까지 줄였다”고 말하면서도 “납기, 품질, 애프터서비스 등을 따라잡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VLCC의 제시가격은 한국이 일본보다 10~15% 높다. 앞으로 10년간 코스트 경쟁력에서 일본이 뒤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역=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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