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오른팔 … 록그룹 딥 퍼플의 ‘광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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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러시아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2일 치러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후계자로 지명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2·사진) 제1 부총리가 크렘린(대통령궁)의 주인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3기 연임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조항에 따라 푸틴은 출마하지 못했다.

입후보자는 모두 4명이다. 극우주의자인 자유민주당 지도자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61), 민주당 당수 안드레이 보그다노프(38), 최대 야당인 공산당 지도자 겐나디 주가노프(63)가 메드베데프에게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1차 투표에서 메드베데프의 득표율을 50% 아래로 끌어내려 결선에서 그와 맞붙을 기회를 얻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억900만 명의 유권자는 소련 붕괴 후 혼란기의 러시아를 구한 ‘구세주’ 푸틴이 선택한 후보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브치옴에 따르면 메드베데프의 지지율은 72.9%에 달한다. 주가노프는 15%, 지리놉스키는 10%, 보그다노프는 1%에 그쳤다. 크렘린에 칼날을 세우던 유력 야당 후보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총리와 가리 카스파로프 전 세계 체스 챔피언 등은 후보 등록조차 저지당했다. 11개 시간대로 나누어진 러시아 대선은 극동 지역에서 2일 오전 5시(한국시간) 가장 먼저 시작되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이어진다.

메드베데프의 대선 승리는 지난해 12월 중순 푸틴이 그를 후계자로 지명한 순간 이미 분명해졌다. 고향(상트페테르부르크)과 출신 대학(레닌그라드 대학 법대)이 같은 두 사람의 정치적 인연은 17년 전 처음 맺어졌다.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시 정부의 부시장으로 일할 무렵 메드베데프가 그 밑에서 법률 전문가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이후 둘은 줄곧 같은 길을 걸어 왔다.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보좌하고, 푸틴이 메드베데프를 끌어주는 식이었다.

메드베데프는 오랫동안 교육·보건·의료·주택 등 민생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총리직과 러시아 최대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의 회장직을 겸임해 왔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정치 요직과 러시아 최대 수입원인 에너지 분야의 돈줄을 동시에 움켜쥔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개혁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2000년부터 세계적 기업인 가스프롬의 회장직을 맡아 미국과 유럽의 기업인·정치인과 자주 접촉하면서 서방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 이미지도 덜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어에 능통하고 영국의 록 그룹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의 연주에 미치는 록 음악광(狂)이라고 한다.

모스크바=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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