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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서하노이까지>3.사이공 최후의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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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이 설마 사이공을 버릴까요?』 『그럴리야 있겠소? CIA가하노이에서 쿠데타를 일으킨다던데.』 월남패망 사흘전 호치민市(옛 사이공)에 있는 대한민국대사관 앞뜰에 모여앉은 교민들이 수군대는 소리였다.사태는 이미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구엔 반티우 대통령이 철석같이 믿던 수안록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려내려오는 월맹군의 손아귀에 떨어졌기 때문이다.교민들은 남느냐떠나느냐 갈림길에 섰다.정부의 교민철수계획에 따라 해군함정에 오르느냐 눌러앉아 재산을 지키느냐가 고민거리였다.
이때 월남주재 마지막 한국대사 김영관(金榮寬)제독이 나타났다. 『마지막 기횝니다.하노이의 쿠데타같은 유언비어에 속지말고 어서 LST(해군함정)에 타시오.』 가슴이 메이는 순간이었다.
대통령 초상화를 떼어내 불태우고 마지막 태극기를 내려 접었다.
공관의 생명선인 통신기도 도끼로 부쉈다.사이공 국제공항에 적탄이 꽂혀 철수작전을 펼 C-130수송기가 활주로에 주저앉아 불기둥을 뿜고 있었다.
군용기도 해군함정도 정상적인 철수는 이미 때를 놓친 것이다.
이제 미국대사관이 마지막 퇴로(退路)였다.20여명의 우리 공관원은 이 유일한 마지막 탈출구를 이용하게 돼 있었다.
『미국 헬기에 실려 항공모함에 떨어질 생각을 하면 서글퍼집니다.우리 민간항공이 있었으면-.』金대사의 푸념이었지만 미국대사관으로 통하는 통냐트거리에는 이미 필사의 탈출을 노리는 대열로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만삭의 여인이 피를 흘리며 철조망을 넘는 비극의 현장-.이것이 「화이트 크리스마스 작전」이었다.화씨1백도(섭씨 39도)로 끓는 사이공의 FM라디오에서 때아닌 크리스마스캐럴이 흘러나오면 17군데로 지정된 집결장소로 모이라는암호작전이었다.미국인의 안전한 철수 가 최우선이었다.다음이 미군에 협조한 베트남人,그리고 한국등 우방 차례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철수작전은 7함대를 50㎞ 근해에 배치해놓고 제럴드 포드대통령이 밤잠을 설치며 진두지휘한 숨가쁜 대탈출이었다.베트남版 던케르크 철수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을 둘러싸고 포드대통령과 슐레진저 국방,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간에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대통령은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전쟁에 종전선언을 하려 하고,국방장관은 종전 1주전까지 철수작전을 마쳐야 한다고 다그쳤다.키신저는 실낱같이 버티고 있는 월남군의 사기가 일시에 와르르 무너질까 걱정돼 철수작전을 쉬쉬하고 있었다.
그레이엄 마틴 대사는 키신저의 엄명으로 대사관앞을 얼씬거리며대사의 건재(健在)를 과시했다.
미국은 베트남人 협조자를 최대로 구하려 했지만 주로 바걸등 베트남 여자들이 미군과 즉석결혼으로 헬리콥터에 오르는 바람에 정작 타야 할 사람들은 밀렸다.처음에 7천명으로 예상한 철수작전 대상이 3만5천명으로 늘었다.보따리는 한개도 허용되지 않아꼬깃꼬깃 싸온 짐은 눈물을 머금고 내팽개쳐야 했다.
철수작전은 적(敵)은 물론 자칫 월남군이 총부리를 거꾸로 겨눌 위험의 소지가 높았다.실제로 월남경찰이 총을 들이대고 보급창고를 약탈하고 심지어 미국 대사집의 냉장고까지 털어갔다.
출국비자를 내주던 월남 이민국 관리과 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도 피아스타(舊월남화폐)를 얻어챙겼다.촐론街의 화교(華僑)상인들은 최고 2백만 피아스타까지 뇌물을 바쳤다.
월남 패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러진「의식(儀式)」은 부패만이아니었다.그것은 쿠데타였다.그 와중에 공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최후의 월남대통령으로 사나흘 간 독립궁(사이공대통령관저)에 앉았던 민장군을 공격했다.정치가들은 마지막까지 거 짓말을 내뱉고있었다. ***마지막까지 쿠데타가… 월남패망 1주일전 티우대통령이 사임하여 대만으로 사라지자 마우총리는『공화국은 안전하다』고 발표하고 구속학생 석방을 약속하면서 시민의 외국탈출을 자제해 줄 것을 호소했다.구엔 카오 前총리도『탈출은 자존심문제』라고 했으나 며칠후 괌島 수용소에 얼굴을 내밀었다.
미국에서는 4월17일 베트남戰이 이미 끝나 있었다.이날 상원군사위원회는 포드대통령이 요청한 7억달러에 이르는 對베트남 군사원조案을 거부했다.키신저는 이 돈으로 2년을 더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그동안 협상을 해보겠다는 계산이었다 .
본디 전쟁은 오산(誤算)의 게임이다.오판의 산물이 전쟁인 것이다.부패한 정부군을 첨단무기와 돈으로 떠받치면 이길 수 있다는 오판 말이다.천재두뇌 존 맥나마라 前국방장관이 최근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내린 오판에 대한 참회가 그 숱 한 전쟁의 오판에 마침표를 찍을수 있을지.우리는 약 30년에 걸친 월남전에서 가장 극적인 사진 한장을 기억한다.그것은 4월30일 사이공 최후의 새벽,월남 대통령宮 정문을 치고 들어서는 월맹군 탱크사진이다.그 새벽을 달리던 여섯대의 탱크가 있었다.맨앞의 지휘관은 월맹군의 구엔 반 호 소령이었다.해방전쟁의 끝내기를 하고 있던 호소령은 당시 가벼운 오판에 빠졌다.사이공에서 시가전을 예상했으나 너무도 조용한 무저항 때문이었다.그날 새벽 그의목적지는 독립궁이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쾌속으로 달리느라 독립궁으로 가는 방향을 잃고 말았다.길잃은 정복자였다.당황한 호소령은 탱크를 세우고 때마침 자전거를 타고 용감하게 지나가는 여인을 붙들었다.
『독립궁이 어디죠.』 『바로 저 건물이오.』 눈앞의 건물이었다.호소령의 탱크는 그대로 질주하여 독립궁 정문 철책을 폭풍처럼 밀고 들어섰다.
***무저항에 越盟軍 당황 그는 탱크속에 남은 포탄이 두개 뿐이었음을 알고 또한번 당황했다.정문을 부수고 들어서며 발사명령을 내렸다.불발이었다.그는 두번째 사격을 중지시켰다.대신 월남기를 찢어버리고 독립궁에 금성홍기(金星紅旗)를 걸어올렸다.30년전쟁이 끝나 는 순간이었다.
기자는 지금 호치민市를 걷고 있다.독립궁앞을 지난다.미국대사관앞을 거쳐 베트남戰 종전 20주년 퍼레이드場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아직 호치민市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대사관 건물은 공산정부 소유로 넘어가 석유회사에 세를 내주고 있다.사이공 최후의 새벽,그 철조망 쳐진 대사관 담벼락을 기어오르던 비명소리는정적(靜寂)에 묻혀있었다.하지만 그날 새벽 11 명의 美해병이대사관을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군중을 향해 쏘아댄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와 함께 그 비탄의 호곡(號哭)이 어디선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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