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결혼도 어렵거니와 이혼은 더하여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호 24면

얼마 전 이혼한 지인 왈, “결혼할 땐 한 가지 이유(사랑)밖에 없지만 이혼할 땐 백 가지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하긴 그렇다. 사람들은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어떤 점에 반했어요?”라고 묻을 때의 수십 배 집요함으로 이혼하는 부부를 ‘신문’한다. “꼭 그래야 하느냐”라는 안타까운 질문 밑에 ‘나도 여태껏 버티는데’라는 씩씩거림을 감추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만큼이나 “그리고 그들은 끝내 도장을 찍었다”는 결말까지는 만만찮다. 한 중년 부부의 옥신각신 이혼 행보를 그린 『중국식 이혼』을 읽고 알았다. 5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읽어낼 만큼 서사 구조가 간단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지만, 읽고 나니 이혼 참 힘들다.

이혼에 어떤 당위성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탈옥 시도가 번번이 좌절돼 보는 이의 간을 죄었다 풀었다 하는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소설 주인공들의 이혼 과정이 워낙 우여곡절이라서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은 ‘깨끗하게’ 수속을 끝내지도 않는다. “젠핑은 이혼합의서를 보지 않는다. 그의 두 눈은 눈앞의 펜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후속편이 나온다고 해도 놀랍지 않겠다.

베이징의 중년 부부 쑹젠핑과 린샤오펑은 소설 도입부(80쪽)에서 이미 결정한다. “남은 문제는 누가 먼저 이혼을 제기하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혼하자는 말을 어떻게 꺼낼 것인가. 국립병원 의사로 무난하게 살아가는 남편 젠핑을 들쑤셔 외국계 병원으로 옮기게 한 이는 아내 샤오펑이다. 외아들 당당의 전도유망한 장래를 위해서였다. 초등학교부터 인생이 갈리는데 아무리 학비가 비싸더라도 시범학교를 보내야 했다. “내가 뭣 때문에 샤오펑의 계획대로, 샤오펑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죠?”라는 젠핑의 푸념은 무의미했다.

하지만 젠핑이 예전 연봉의 열 배를 받게 되면서 집안 질서가 바뀐다. 샤오펑은 중학교 국어 교사직을 버리고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에만 전념한다. 마음이 공허해진 샤오펑은 끊임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사소한 여자 관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신의 변화에 주목해 주길 요구한다. “나 당신이랑 함께 살기 싫다고! 진짜 싫다고!”

치를 떨면서 악다구니 치면서도 이혼은 차마 할 수 없다. 자신이 다치면 부모가 몸싸움을 하다가도 놀라 달려와 어르는 것을 보고, 아빠·엄마 앞에서 칼로 자해를 하는 당당이 있다. 3년 연애 끝에 결혼생활 10년, 아이 하나. 아무리 대차대조표를 연구해도 답이 안 나온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것은 대칭과 역설이다. 샤오펑과 젠핑의 대척점에 20대 신혼 부부 리우둥베이와 쥐안쯔가 있다. 40여 년간 결혼생활의 풍파를 극복하고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샤오펑의 친정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잘나가는 앞집’이었다가 억척 이혼녀가 된 샤오리가 있다. 아내로 인해 속앓이 하는 젠핑에게 이혼을 종용하던 둥베이는 오히려 외도가 들켜 쥐안쯔와 배 속 태아를 잃고 만다. “두 사람이 함께 살려면 서로에게 맞추어야 하는 법”이라고 샤오펑의 친정 어머니는 달래는데, 샤오펑은 뒤늦게 자신이 아버지가 외도해 낳은 딸임을 알게 된다.

책을 읽는 재미는 김수현 드라마를 보는 듯한 샤오펑의 속사포 같은 대사다. 실제로 저자 왕하이링은 ‘중국의 김수현’으로 일컬어질 만큼 중국인의 결혼 생활을 잘 묘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식 이혼』은 2004년 9월 베이징 출판사에서 출간됐고, 같은 해 베이징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됐다. 인민문학출판사에서 펴내는 잡지 ‘당다이(當代)’에서 주관한 ‘제1회 당다이 장편소설 연도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후기에서 “사랑은 신념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사랑에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이…”라고 했지만, 속전속결로 결혼하고 이혼하는 현대 중국과 한국 독자에게 더 솔깃한 말은 둥베이의 다음과 같은 제언이 아닐까.
“미래에는 정부가 나서서 결혼 기간을 정해줬으면 좋겠어. 결혼 기간을 3년으로 정하는 거야. 3년이 넘으면 반드시 이혼하도록. 정말 사랑하면 3년 연장. 이렇게 백년해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