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슬쩍 덮어버린 후보 前科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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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총선 출마 후보자의 신상공개 대상 가운데 전과(前科) 범위를 벌금형 이상으로 정했다가 막판에 이를 금고형 이상으로 크게 좁히도록 선거법을 고쳤다. 현역의원 가운데 벌금형 이상의 전과자가 많았기 때문인 모양이다. 후보자 전과기록 통계를 보면 대부분이 벌금형.자격정지.구류.선고유예.기소유예 등이며 금고형 이상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전과기록은 후보자의 결격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적인 신상정보 중의 하나다. 그래서 2000년 16대 총선 때 금고형 이상의 전과가 공개됐고, 이번에는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지난 2일 의원정수를 늘리는 정당 간 야합의 과정에서 당초 합의를 깨고 선거법의 관련 조항을 원래대로 환원시켰다. 이렇게 되면 도박.음주운전 등 생활사범, 선거사범, 그린벨트 훼손 등 환경사범, 폭력사범, 배임.사기.횡령 등 경제사범의 경력은 은폐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겠다는 발상이다. 전과기록의 경중(輕重)에 의해 공직에 영향을 끼칠 것인가 아닌가의 판단은 유권자가 할 일이다. 따라서 후보의 신상정보는 가능한 한 자세하게 알려주는 것이 온당하다. 이대로 가면 선관위가 각 가정에 보낼 후보 소개서에 전과기록을 자세히 싣겠다던 계획은 무산된다. 후보자의 신상정보 가운데 전과기록은 가장 중요한 정보다. 이를 빼놓자고 했으니 국회를 전과자 집단으로 만들 셈인가. 이러고도 경선대상자 선정에서 엄격했다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은 8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당초 안대로 선거법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려는 부당한 시도를 취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