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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잃어버린 나침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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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첫째, 로스쿨의 정체가 불분명하다. 종래 우리나라의 법학교육은 분업 내지 협업의 체계로 이루어져 왔다. 4년 과정의 법과대학에서 기초적인 법학교육을, 2년 과정의 사법연수원에서 실무교육을, 2~4년 과정의 일반대학원에서 학술연구를, 2~3년 과정의 특수대학원에서 특성화된 전문교육을 각각 맡아 왔다. 1만 명 가까운 법대 졸업생들은 사법시험을 통과해 변호사의 길을 걷는 1000명 외에는 국가와 사회 곳곳에 인재로 공급돼 한국 법치주의를 지탱해 왔다. 현재의 로스쿨은 법학부도 특수대학원도 사법연수원도 폐지하고, 일반대학원마저 존폐의 기로에 몰아넣고 있다. 단 3년 과정의 로스쿨이 기초적인 법학교육과 실무교육, 특성화된 전문교육까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미국식 로스쿨의 경우도 3년 정규과정(JD)에서 기초적인 법학교육을 하고, 특성화된 전문교육은 1년 특별프로그램(LLM)에서 하고 있다. 실무교육은 재판연구관이나 수습변호사로서 받고 있다.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의 경우에도 법과대학이 여전히 중심이고 로스쿨은 대학원의 일부로 편제되어 있다. 중국도 로스쿨과 법과대학이 병존하고 있다. 한국의 로스쿨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기형적인 제도로서 한국 법학교육의 토대를 무너뜨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로스쿨과 무관한 정책적 목표가 무리하게 실험되고 있다. 입시과열을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법과대학을 폐지한다고 하는데, 그 결과는 대학입시 과열을 로스쿨 입시 과열로 한 단계 미루는 것일 뿐이다. 입시과열이 고등학교의 공교육을 붕괴시킨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로스쿨 입시는 대학교육을 붕괴시켜 학문 발전을 저해하고 국가의 인재양성 시스템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 당사자들과 국가에 더 유해할지는 불문가지다.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실제의 교육역량과 무관하게 로스쿨 설립을 인가한다는데,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대학에 대한 명백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셋째, 현재의 로스쿨은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 있어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제경쟁력 있는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한다고 했지만, 많아야 150명, 적게는 40~50명에 불과한 미니 로스쿨을 양산해 특성화된 전문교과목이나 영어강좌의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정원이 300명인 일본의 와세다대 로스쿨조차 전문교과목이 수강생 부족으로 줄줄이 폐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로스쿨을 통해 불량품질의 변호사가 다수 배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법학교육계와 법조계에 이미 팽배해 있다. 로스쿨 출신자와 사법연수원 출신자가 동시에 배출되는 2012년 법률시장에서 로스쿨 출신자는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저렴한 비용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해 국민의 사법 접근권을 높인다고 했지만, 배출되는 변호사 숫자는 별로 늘리지 않는 데다 로스쿨의 고비용 구조로 말미암은 졸업생들의 보상심리 때문에 법률서비스 비용이 낮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들의 보상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경우 변호사 윤리에 반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빈발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보면 로스쿨을 도입해서 얻을 것은 별로 없는 데 반해, 잃을 것은 정말 많다. 한국 법치주의의 인적 기반의 산실인 법과대학이 사라지는 것이다. 고작 2000명만이 법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법치주의를 한다고 하면 누가 곧이듣겠는가. 새 정부는 좌표를 잃은 채 방황하고 있는 로스쿨 추진을 중단하고 한국 법학교육의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