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들었지만 그림이 씨가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의 졸업작품처럼 길례는 내내 아기를 안은 채 새장에 갇힌 여인으로 살아왔다.
어느날 그 새장 문이 활짝 열렸다.
아니다.
새장 문을 그림 붓으로 지워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새장을 나서는 것은 길례의 결단 하나에 달려 있다.
저 빛이 가득하나 바람 설레는 넓은 하늘로 날아 오를 것인지,아니면 이 길들여진 좁은 공간에 그대로 머물 것인지….
길례의 날개 한 쪽은 이미 조금씩 파닥이고 있었다.그런데 낯선 또 하나의 아기가 새장 안에 들어와 길례의 가슴을 찾는다.
그래도 뿌리치고 나설 것인지,아니면 다시 숙명처럼 아기를 품어살아갈 것인지….
『경주 가거든 고분공원을 들러봐요.』 서여사의 도움말이었다.
비어 있되 넉넉하고,허무하되 아름다운 옛 무덤의 푸른 능선을눈여겨보고 오라는 것이었다.쌍분(雙墳)은 특히 어머니 젖가슴 같이 정답다고도 했다.
하긴 거대한 무덤을 마주하면 이 자질구레한 번민도 조금은 가실지 모르겠다.
고분공원은 천마총(天馬塚)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꾸며 무덤 안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천마총은 신라 제22대 지증왕(智證王)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증왕은 6세기초의 매우 개혁적인 임금이다.나라 이름을「신라」(新羅)로 정하고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쓰기 시작한임금이기도 하다.소로 밭갈이하는 법을 백성에게 널리 가르치고,죽은 사람과 함께 산 사람을 생매장해온 순장(殉葬) 제도를 없애고,상복법(喪服法)도 새로 정했다.
장사하는 법을 바꾼다는 것은 고대에 있어서는 정권의 변동을 의미했다.
지증왕은 도대체 어디서 온 누구일까.그는 큰 몸집으로 유명하다.그의 「음」(陰)도 덩달아 커서 한 자 다섯치나 됐기 때문에 맞는 배필이 좀처럼 없었다고 『삼국유사』는 왕의 결혼에 얽힌 얘기를 소상히 적고 있다.
지증왕은 하얀 말을 타고 먼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민족의 후손이었을까.천마총서 출토된 흰 자작나무 껍질의 말다래에 힘차게 그려진 하얀 말 그림은,지증왕의 출신을 강력하게 증명해주는 물증일 수도 있다.
고구려.백제.신라,그리고 가야.우수한 문화와 뛰어난 기술을 고루 지닌 이 4대세력이 대륙과 반도와 왜섬에 걸쳐 막강한 세력을 편 시기를 우리는 「삼국시대」(三國時代)라 부르고 있다.
낙동강 유역의 풍요한 영토를 온통 차지하며 5~6세기 동안이나 번영해온 가야를 왜 탈락시키고 있는지 길례로서는 알 수 없다.당연히 「사국시대」(四國時代)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아니면 「삼국및 가야제국시대」라 하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