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좋은 대통령을 고대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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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좋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의 말에, 특히 자신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높은 분들 중에는 시종일관 혼자 떠드는 사람이 참 많다. 교수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직업병이니 이해하시라. 하여튼 이번에 교수 출신으로 발탁되신 분들은 조심하시길. 혼자 떠드는 버릇은 자리의 높이와 비례해 대통령이 되면 절정에 도달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대개 다 그랬다. 그 결과 독선에 빠져서 본인들도 국민도 불행해졌다. 교수가 혼자 떠들면 50명이 괴롭고, 대통령이 혼자 떠들면 5000만이 괴롭다.

내가 자유주의를 좋아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모든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지만, 나 자신을 보아도 우리 인간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난 존재인가. 정보도, 정보처리능력도, 윤리의식도 부족해 날마다 잘못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한심한 존재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 정도로 학문과 사회를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은, 존 스튜어트 밀의 말대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서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대통령이 되려면 자유로운 비판과 관용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권력 비판은 주로 야당과 언론의 몫이다. 이 점에서 새 정부는 참여정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처지에 있다. 야당은 지리멸렬이어서 4월 총선이 지나면 소수당으로 전락할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을 그토록 신랄하게 비난하던 주요 일간지들이 새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과하게 우호적이다. 방송도 정부 편들기라는 오랜 전통을 별로 바꿀 것 같지 않다. 언론의 우호적 보도는 새 대통령에게 당장은 사탕이지만 결국은 독약이 될 것이다.

힘 있는 야당과 공정한 언론도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더 좋기는 지혜롭고 강직한 사람들을 옆에 두어 잘못된 정책을 사전에 내부에서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면 부담과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주위에도, 재벌 총수 주위에도 똑똑하고 유연한 사람은 많으나 지혜로우면서 강직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통령도, 재벌 총수도 지혜는 권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 훌륭한 임금의 곁에는 항상 강직한 신하가 있었다. 수천 년 중국 역사에서 명군으로 손가락 꼽히는 당나라 태종의 재상이 위징(魏徵)이었다. 이 노인이 다른 신하들 앞에서 태종에게 맞서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한번은 태종이 이 영감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몹시 화를 내는 것을 황후가 겨우 만류한 적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상소(上疏)와 사간원(司諫院)이라는, 임금에게 직언할 수 있는 언로(言路)가 있었다. 이 언로가 막히면서 조선은 망국의 길로 걸어갔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위가 높을수록 고집 부리지 말고 옳은 말은 누구의 말이든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조급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신중하게 생각하면 무엇이 옳은지 대개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의전행사에 쓰는 시간은 가급적 줄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의논하기 바란다. 부디 새 대통령은 고집이 없길 바란다. 대통령은 유연하고 장관과 수석들은 강직하면 좋겠다.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서울시립대 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