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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광산업계 메가 M&A ‘원자재 공룡’이 등장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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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34면

블룸버그 뉴스

소리 없는 빅뱅(대폭발)이 진행되고 있다. 철광석·석탄 등 원자재를 캐는 글로벌 광산업계에 짝짓기 회오리가 일고 있는 것이다. 군소·중견 업체들은 끼어들 틈도 없다. BHP빌리튼·리오틴토·엑스트라타·앵글로아메리칸·발레 등 이른바 ‘글로벌 빅5’ 간의 메가 인수합병(M&A)이다.

이들 빅5는 한두 종류의 광물을 캐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철광석·석탄뿐 아니라 구리·금·은·텅스텐·우라늄 등 돈이 되는 광물이라면 모두 채굴한다. 이들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끝에서 남미 최남단까지 글로벌 원자재 생산기지와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이들 간의 합종연횡으로 더욱 거대한 광산회사가 탄생하면 글로벌 원자재 생산·유통에 대한 지배력은 훨씬 확고해질 게 뻔하다. 가뜩이나 원자재 값이 급등하고 있는 마당에 거대하고 강력한 시장 지배적 기업들이 등장하는 셈이다.

빅3를 향하여

현재 진행 중인 광산기업 간 M&A 움직임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1·2위와 3·5위 업체 간 결합이다. 1위인 호주·영국계 BHP빌리튼이 2위인 리오틴토의 주주들에게 1470억 달러(약 138조원)를 제시하며 기업 결합을 유혹하고 있다. 리오틴토 회장인 폴 스키너는 값을 더 쳐달라고 요구하며 일단 합병 제안을 거부한 상태다. 하지만 두 회사 주주는 70%가 겹쳐 합병 가능성이 아주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두 번째 움직임은 3위인 브라질 발레와 5위인 영국·스위스계 엑스트라타의 짝짓기다. 양쪽 경영진이 치열하게 밀고 당기고 있어 유동적이지만 발레가 900억 달러(약 85조원)를 제안해 놓은 상태다.

빅5 가운데 아직 특별한 M&A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회사는 앵글로아메리칸이다. 시가총액으론 4위지만 매출액 순위는 BHP에 이어 2위다. 이 회사는 BHP와 리오틴토의 M&A에서 조연으로 등장하고 있다. 리오틴토 경영진은 최근 “앵글로아메리칸을 인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다분히 BHP에 인수 가격을 더 올리라는 제스처로 보이지만 요동치는 글로벌 광산업계의 최근 흐름에 비춰볼 때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진행 중인 M&A가 일단락되면 글로벌 광산업계는 새로운 ‘빅3’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된다. BHP-리오틴토 그룹과 앵글로아메리칸, 발레-엑스트라타 그룹이 주요 광물자원을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도 살기 위해

그동안 세계 에너지·원자재 업체들의 M&A는 기름과 광물 값이 떨어진 시기에 활발했다. 기름 값이 크게 떨어진 1990년대 말 대형 정유업체 엑손이 모빌과 합쳤고 셰브론과 텍사코가 하나가 된 게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원자재 값이 나날이 뛰는 요즘 메이저 광산업체들이 짝짓기에 몸이 단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광산회사들의 실적이 원자재 가격 상승률만큼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지난주 발표된 리오틴토의 2007년 순이익은 7억4000만 달러로 한 해 전보다 겨우 1% 정도 늘어났다. 반면 철광석 현물 가격은 지난해 100% 가까이 올랐다. 다른 광물 가격 오름세도 비슷한 수준이다.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탓이다. 광산회사들은 한국의 포스코 등 세계적인 철강업체와 장기 계약(계약 가격을 미리 정하는 것)을 하고 원자재를 공급하는데, 지난해 현물 값은 계약 가격보다 2배 정도 높았다. 여기에다 광산 개발·매입 비용이 턱없이 치솟아 현금을 많이 지출해야 했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였던 셈이다. 주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여기에다 중국 치날코 등 광산회사들이 중견 회사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리며 달려오고 있다.

“빅5는 고객인 철강회사 등과 가격 협상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중국 등 신흥공업국 회사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덩치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M&A 전문 법률·경영 컨설팅회사인 미국 설리번&크롬웰은 최근 보고서에서 진단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반발·견제

현재 BHP·리오틴토·발레는 일본 철강회사들과 장기 공급 계약 협상을 벌이고 있다. 기존 계약 가격은 석탄과 철광석의 1t 값이 각각 100달러와 50달러 선이다. 광산회사들은 새로운 계약 조건으로 2배 정도 인상한 값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빅5가 빅3로 재편되면 이런 협상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빅3가 막강한 독과점 파워를 동원해 가격을 제시하며 ‘사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배짱을 부릴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라이스 대학의 에너지 문제 연구원인 아미 자페는 “에너지와 원자재 시장의 독과점 기업들이 과거에 보여준 행태를 보면 아주 일방적이었다”며 “정부 등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독과점 광산업체들은 가격을 낮추거나 공급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점을 익히 알고 있는 세계 철강회사들이 빅5의 M&A 움직임에 반발하며 견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포스코 등 굴지의 철강회사들이 회원인 세계철강협회(IISI)는 지난해 말 BHP의 리오틴토 인수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유럽철강협회(Eurofer)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광산회사 M&A는 반독점법을 어기는 행위”라며 유럽연합(EU)에 정식 조사를 지난 1월 말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이나 EU 공정거래 당국이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M&A를 ‘사전에’ 무산시킨 경우는 극히 드문 게 사실이다. 결국 빅5의 M&A는 수익 극대화라는 경제 논리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와 광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등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처럼 아주 부담스러운 ‘원자재 수퍼파워’가 하나 더 탄생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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