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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바짝다가온 1백엔=9백원 對日逆調.기업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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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백엔=9백원」시대의 임박은 우리 경제의 구조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60년대 거의 1對1이었던 엔화와 원화가 이제 1對9가 되는 상황에 이르도록 우리 경제는 꾸준히 일본에 대해 스스로를 낮춰왔음에도(평가 절하)불구하고 여전히 그 결과는 거대한 무역 역조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미국도 달러 약세를 겪고 있지만 우리와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미국은 자원도 많은데다자기네 돈이 세계의 기축(基軸)통화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본에대한 의존이 심한 우리가 당장의 엔고(高)가 가져다주는 수출 증대 효과만 생각하다가는 영원히 일본 경제의 영향권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65년 국교정상화이후 韓日간의 경제관계는 의존(依存)의 역사를 엮어왔다.과도한 대일의존을 벗어나 떳떳한 경제로 자리잡게 하려는 우리 자체의 노력은 아직까지 무위에 그치고 있다.
60년대에 22억달러로 우리 무역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대일무역역조는 90년대에 들어와서도 작년까지만 무려 4백3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구조적으로 대일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경제구조는 엔貨와 원貨간의 비대칭적인 관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70년대초 1백엔에 1백18원하던 것이 이제는 9백원에 육박하고 있다.25년사이에 우리의 화폐가치가 9분의1로 줄어든 것이다.
최근 엔.달러貨간의 급격한 환율변동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물론 대일무역역조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2차대전이후 반세기동안 세계경제는 구미중심에서 아시아중심으로성장과 발전의 핵(核)이 이동해왔다.그 추세의 핵심은 바로 일본의 경제발전이었다.무역역조와 외채면에서 미국같은 나라가 일본에 진 빚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크다.그러나 미국 등 서방선진국과 일본의 관계는 경제의존관계보다는 국제경쟁력의 약화로 설명해야 한다.저축에 비해 과도한 소비,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부족이 대일무역역조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대일의존은 문제가 더 심각하고 그 뿌리도 깊다. 대일의존은 우리의 경제발전과 동시에 시작되었다.60년대부터우리의 외국인투자 대부분은 일본기업에 의한 것이었고,「적정기술」의 이름으로 들여온 선진기술도 대부분 일본 것이었다.투자와 기술을 따라 부품.원자재등 국내시장뿐 아니라 세계 를 겨냥한 경제활동도 일본과의 끈끈한 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본의 상품.자본.기술,심지어 일본의 제도까지 들여오는 것을 당연시해 왔다.
따라서 자본과 기술등 경제발전의 필수요소가 부족했던 우리가 수출확대를 통해 급속하게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는 대일의존은 피할수 없었다.
기술력이 국제경쟁을 좌우하는 시대에서 「경제자립」을 위한 투자는 기술투자가 핵심이다.그러나 앞으로도 일본을 따라가기 위한투자라면 대일경제의존만 심화될 뿐이다.따라서 앞날에 대한 기술투자는 우리의 고유한 기술기반을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金廷洙 본사전문위원.經博 『이번 엔高가 산업구조조정의 마지막기회입니다』(삼성그룹사장단회의)『엔고를 활용하자면서 결국 일본에 코꿰여 옴쭉달싹하지 못했던 과거가 되풀이돼서는 안됩니다』(金相明 현대종합상사 기획이사).요즘 엔고를 바라보는 삼성.현대등 주요기업 들은 벼랑끝에 몰린 심정이다.
사실 국내기업들은 그동안 엔고가 닥칠 때마다 엔고를 활용하자는 구호를 외쳐왔다.그러면서도 당장 구하기 쉽고 쓰기 편한 핵심부품과 기술의 일본의존을 탈피하진 못했다.늘 구호로 끝나고 말았다.오히려 일본의존도가 심화돼 대일역조만 늘어 나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그러나 이번에는 기업들이 다르게 나오고 있다.비장감마저 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李健熙)회장 진두지휘아래 엔고대책을 추진하고 있고 현대는 그룹차원에서 유럽.미국에 나가 일본을 이길수 있는 기술도입에 나서고 있을 정도다.
이번에 엔고를 극복하지 못하면 금세기는 물론 다음세기까지도 일본에 코가 꿰인채 영원한 이류기업이자 하청기업으로 머무를 것이라는 절대절명의 인식이 기업에 퍼져 있다.
삼성그룹을 보자.지난해 11월의 1차대책회의에 이어 지난 3월엔 전계열사 사장단회의를 열어 엔고활용방안을 수립했다.단기적으로는 97년까지,장기적으로는 2000년까지 일본에 기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초일류기업으로 나간다는 내용이다 .
전계열사가 모여 근본적인 사업구조 조정방안을 수립,추진해나가고도 있다.단기적인 수출증대방안은 부차적인 얘기다.대신 핵심부품과 설비의 국산화가 당장의 실천과제로 부각됐다.
***「克日」기술도입 나서 수입선을 일본에서 미국.유럽등으로전환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일본에 유통망을 구축,準내수시장으로삼아 2000년까지 일본과의 무역수지를 균형으로 만들겠다는 기본계획도 있다.
말잔치가 되지 않도록 5월중 사장단회의를 다시 소집,전자부품등 품목 하나하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脫일본 계획서를 제출토록 했다. 현대그룹의 각오도 대단하다.일본을 벗어나 보자는 전략이다.그룹사 간부들이 영국.독일 등지로 뛰고 있다.
독일의 티센.크루프社등 세계유수의 중공업회사들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기 위해 물밑접촉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핵심기술제휴나 기술공동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이미 현대정공은 독일의 지멘스社와 선반분야 핵심기술제휴를 이뤄냈다.일본기업과 대등한 입장에서려면 그들의 기술과 부품으로는 안된다는 인식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내 기술개발력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해 서울大공대.울산大공대등 8개대학과 시작한 기술개발과제도 지난해 54개에서 올해는 1백여개로 늘렸다.
여기에만 지금까지 2백30억원이나 들어가고 있다.올 기술개발비도 1천억원정도로 총매출의 2.5%로 늘렸다.
LG.대우.선경.코오롱등 다른 대기업들도 기술개발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데 이어 이미 일본산 부품은 가급적 안쓰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수입선다변화에 어쩔 수 없이 몰리고 있다. ***부품수입선 다변화 코오롱은 일본에서 들여오던 화섬관련 원부자재를 이탈리아.독일등에서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LG전자는 물적자원지원실(구매기획)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홍콩.독일.싱가포르.이탈리아.대만등을 돌며 부품수입선 다변화를 다그치고 있다.
악기업체인 삼익이나 영창도 휄트류,강력접착제등 일본부품의 국산화를 재촉하고 있다.
閔國泓기자 요즘 식품업계의 수출부서 직원들은 맡고 있는 품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제빵 원료인「프리믹스」를 파는 직원들은 일본 바이어들로부터 수출단가를 10%이상 내려달라는 끈질긴 요구를 받고 있다.
올들어 엔 값이 우리 돈보다 10%이상 오른 만큼 이를 반영해달라는 주문 때문이다.
관계직원들은 일단『우리도 원 高에 시달리고 있다.값을 내렸다가 엔高가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면 우리만 손해이니 좀 더 기다려보자』고 버티고 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반면 MSD(화학 조미료 원료)를 사가는 일본 바이어들은 가격인하를 요구할 입장이 못돼 별다른 「말」이 없다.
프리믹스는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는 품목이 아니지만 MSD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인데다 만들기도 까다롭고 최근에는 특히 물량이 달려「공급자 시장」이 되어버렸기 때문.
올들어 엔 값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대일수출의 경우 MSD같은 경쟁력있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결제통화를 엔貨에서 달러로 바꾸든지,아니면 엔高분만큼 단가를 내리라는등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엔고부담을 우리 기업들에 떠넘기고 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반면 대일 수입의 경우 일본측은『엔으로 대금을 받고 값도 깎아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배짱을 물리칠 힘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다는 데있다. ***배짱 물리칠 힘 없어 수입의 경우 일본에서 사오는것이▲미국.유럽등지보다 운반비가 적게 들고▲애프터 서비스를 받기 쉬울 뿐 아니라▲그동안 써오던 것이어서 「공정의 안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엔高가 지속됐던 90~94년중 우리 기업들은「수출대금은 달러로 받고,수입대금은 엔화로 주는」비율이 점점 높아지는등밑지는 장사를 해왔으며 올들어서는 지난달 20일까지만 이미 대일 무역적자가 30억달러에 이르러 같은 기간 우 리나라의 전체무역적자 규모(26억달러)를 웃돌았다.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高품질,일본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수입선 다변화등이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에 엔高를 호재로 만들지 못한채 오히려 적자만 커진 상황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문시열(文時說)동향분석실장은『생산성향상.연구개발.원가절감등을 통해 우리 제품의「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만성적인 대일의존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閔丙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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