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돌 잡역부 국정원장, 그 위에 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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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지난해 대선 투표일 하루 전날 비밀리에 방북한 적이 있다. 방북 의도가 논란이 되자 그는 지난해 10월 열렸던 남북 정상회담의 기념식수를 위한 표지판을 설치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어제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드러났다. 이 정권은 정상회담 방북 때 250㎏짜리 표지석을 가지고 갔었으나 북한의 반대로 설치하지 못해 도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북한과의 협상을 거쳐 약 4분의 1로 줄어든 70㎏짜리 표지석을 가지고 김 원장이 올라갔다는 내용이다.

기념식수는 손님인 노무현 대통령이 했으니 북한 주민이 볼 표지석은 북한이 설치하는 게 순리고 예의다. 그런데도 손님 측에서 요란하게 250㎏짜리 돌을 가지고 갔다. 대선은 국가의 최대 중대사 중 하나고 바로 전날은 국가 정보기관장이라면 국내외 상황을 점검하면서 비상 대기해야 하는 날이다. 250㎏ 소동도 부끄러운데 국정원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대선 전날 70㎏짜리 돌을 싣고 휴전선을 넘어 평양에 간 것이다. 국가 정보기관의 품격이 이렇게까지 추락했다. 차라리 “돌 말고 다른 비밀스러운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이 사실이었으면 싶을 정도다. 김 원장은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 자신이 북한 정보기관장과 나눈 대화를 문건으로 만들어 외부에 유출했다. 그런 정보기관장을 대통령은 싸고 돌다가 27일 만에야 사표를 수리했다.

김 전 원장은 지난해 9월 아프간 인질사태 때는 ‘선글라스 협상가’와 함께 버젓이 사진을 찍으며 신분을 노출시켰다. 국정원은 원장의 활동을 찬양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총선 출마 생각이 있었는지 김 전 원장은 고향 행사에 화환을 보내고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장들이 김 전 원장을 보면서 한국의 정보기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노 대통령 정권에서 많은 것의 존엄과 권위가 망가졌지만 가장 추락한 것이 국정원장이다. 김 전 원장과 그의 울타리가 되었던 노 대통령은 ‘국가권위 손상’의 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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