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 ③ -‘문화재 DNA’ 빨리 확보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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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내부가 13일 밤 언론에 공개됐다. 방화범 채종기(70)씨가 1층 누각에서 2층 누각으로 올라가기 위해 밟았던 목조계단은 그나마 형체가 남아 있었다. 2층 누각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사진=변선구 기자]

숭례문의 ‘죽음’을 ‘소신공양(燒身供養·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이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재발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정밀 실측도면이다. 문화재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자료로 남기는, 이른바 ‘문화재 DNA’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 ‘문화재 DNA’로부터 예방과 사고 방지 노력과 부활의 시도는 시작된다.

◇한 해 예산 4억원 불과=숭례문의 정밀 실측도면은 서울 중구청이 2006년 2월 작성했다. 실측 조사 사업에는 국비와 지방비가 7 대 3의 비율로 들어갔다. 도면에는 각 부분의 치수가 ㎜ 단위로 기록돼 있고 기와와 단청의 문양, 부재의 성분도 분석돼 있다. 특히 석축의 돌 하나하나마다 번호를 붙여 치수와 성분을 기록했다. 시료의 현미경 사진과 레이저 스캐닝 사진 등도 수록됐다.

나이테 측정을 통해 사용된 목재의 연륜연대(나이테연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숭례문 창건 당시인 1300년대 벌목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재부터 1400년대, 1800년대, 1900년대에 벌목된 목재들이 골고루 발견됐다.

하지만 이렇게 자세한 ‘DNA’라도 갖고 있는 목조문화재는 전체의 반에도 못 미친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의 멸실이나 훼손에 대비해 1999년부터 국보와 보물 등 중요 목조문화재에 대한 정밀실측 조사를 연차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99년 밀양 영남루, 강릉 해운정, 쌍계사 대웅전, 경주 향단, 고창 창당암 대웅전 등 보물 5건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보 8건, 보물 44건에 대한 정밀실측을 실시해 보고서를 발간했다. 전체 국보·보물 목조문화재 145건 중 37%에 해당한다. 한 해 4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남겨지는 ‘문화재 DNA’는 3~4건에 불과하다.

이와 별도로 숭례문처럼 관리기관인 지자체가 국비 지원을 받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동대문의 경우 서울 종로구청이 2006년 정밀실측 도면을 작성해 놓았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문화재 실측 조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조건축물 진화방법 연구를”=“목조건축물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천장 위 안쪽에 나무가 많아요. 거의 밀봉상태로 들어 있는데, 여기에 불이 붙을 경우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물을 잘못 뿌리면 오히려 불길이 더 퍼지기도 합니다.”

권기혁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권 교수는 “지붕 위로 물을 부어도 소용이 없을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런 목조건물의 특성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이 근원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구조의 ABC가 들어 있는 ‘문화재 DNA’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목조건축물 화재 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산화탄소 소화기’와 ‘청정소화약제’ 등을 이용한 특수 소화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충국 창신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숭례문 화재 초기에 이산화탄소와 청정소화약제를 사용했더라면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윤 교수는 “기업체에서는 중요 문서나 장비가 있는 곳에 많이 설치하고 있는데, 문화재에는 관련 법규의 미비로 설치가 되지 않고 있다”며 “특수 소화기 설치를 유도하는 ‘문화재소방 특별법’을 이 기회에 만들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글=배영대·한은화 기자 ,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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