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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386’ 떠난 자리 접수한 MB의 新386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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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중추로 부상했던 ‘386’(1960년대 출생으로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이 정권의 운명을 따라 쇠퇴하고 있다. 진보·개혁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떠나는 사이 탈이념과 실용을 기치로 건 ‘이명박(MB)의 신(新)386’이 하나씩 정치 무대로 올라오고 있다. 이제 이들은 40대로 성장했다. 386의 끝자락인 69년생이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386’보다는 ‘486’이라는 표현이 정확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컴퓨터 프로세서가 ‘386’에서 ‘486’으로 발전했듯 MB의 386도 진화할 수 있을까.

MB 386은 참여정부 386과 확연히 다르다. ‘MB 386’의 맏형 격인 박영준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은 그 차이를 “근로소득세를 제대로 낸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찾는다. 운동권 386들이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 매진할 때 이들은 각 분야에서 직업을 가지고 전문성을 길러왔다는 뜻이다. 사상과 이념 논쟁보다는 생업전선에서 생존을 위한 싸움에 몰두한 사람이 많다.

18대 총선 예비 후보로 등록한 9명의 ‘MB 386 참모’들이 4일 서울 통의동의 당선인 집무실 건물 앞에 모였다. 이들은 헤어지면서 “다들 살아서 다시 보자”고 다짐했다. (왼쪽부터) 진성호·권택기·경윤호·박준선·이동호·강승규·조해진·김영우·김용태씨. [최정동 기자]


김대식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 위원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해 학생운동은 전혀 할 수 없었다”고 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조해진 당선인 부대변인 역시 “내가 벌어 학비를 대고 집에까지 부쳐줘야 하는 상황에서 내 생활 자체가 생존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형과 함께 이 당선인을 돕고 있는 조 부대변인의 동생 조해구 인수위 실무위원은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우리 형제 모두 일주일에 6~7일을 과외를 해야 했다”고 기억했다.
 
“우린 근로소득세 내고 살아 와”

MB는 2006년 6월 서울시장 퇴임 후 대선 준비를 하면서 386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서울 견지동 안국포럼 사무실이 무대였다. 지금도 안국포럼 멤버들이 386 참모의 중심축이다. 이들은 전략·홍보·정책 등 각 분야에서 실무를 담당하며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386 중에서도 핵심 그룹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 당선인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을 공유한다.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질책 강도가 높은 이 당선인의 용인술은 이들도 피해 가지 못한다.

기자 출신의 강승규 인수위 부대변인은 “내가 이 당선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혼난 인물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서울시 홍보기획관 시절 교통대책을 논의하던 도중 이 당선인으로부터 엄청나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는데 비서실에서는 다들 강 부대변인이 직장을 그만둘 걸로 예상할 수준이었다.

MB가 영입을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권택기 당선인 비서실 정무기획2팀장. 한나라당 내 손꼽히는 전략통인 그는 MB로부터 면전에서 ‘해고 통지’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경선 당시 협상 전략을 맡았던 그가 여론조사 반영 부분을 잘못 예측하는 바람에 이 당선인에게 불리한 룰이 만들어졌다. 화가 난 이 당선인은 그에게 “본선에 참가할 생각을 하지 마라”고 통고했다. 당시 캠프 주변에선 “이제 권택기는 끝났다”는 얘기가 확 퍼졌다.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이 당선인은 현장을 많이 챙긴다. 그러다 보니 실무를 담당하는 386과 직접 부닥치게 되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잦아지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MB의 질책을 안 겪어본 사람은 그만큼 멀다는 얘기도 된다.

서울시 정무보좌관으로 일했던 조해진 부대변인은 이 당선인이 2004년 끈질긴 설득을 통해 영입한 케이스다. 그런 그도 이 당선인의 ‘매’를 피해 갈 수 없었다. 2006년 9월께 박근혜 전 대표가 독일에서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 “이명박 역시 출마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이 당선인은 이를 막도록 지시했다. 박 전 대표의 출마 선언을 따라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자 MB는 전화로 30여 분간 “정신이 얼얼할 정도”로 야단을 쳤다. 조 부대변인은 “처음엔 마음이 상했으나 박영준·강승규만 맞던 야단이 드디어 나에게도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더라”고 털어놨다.

물론 호되게 야단쳤다고 그걸로 끝장을 보는 건 아니다. 다들 잘릴 거라고 예상했던 권택기 팀장이 본선에서 스케줄팀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게 전형적 사례다. 조 부대변인은 “오래 지켜보니 이 당선인은 질책을 듣고 위축되거나 상처를 입을 만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업무를 챙기는 MB의 일하는 방식도 부담이 덜한 젊은 참모를 자주 찾게 하는 요인이다. 김영우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팀 부실장은 경선 기간 중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받고 진땀을 흘린 경험이 있다. 이 당선인이 “대운하 정책에 대해 여론이 안 좋은데 대책이 없느냐”고 추궁한 것. 이 당선인은 그날 밤 11시에 김 부실장을 다시 찾아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급진 좌파에서 공안검사 출신까지

‘386세대’라는 말은 1990년대 초반 30대의 운동권 출신들이 찻집 이름을 짓다가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당시로선 최신 컴퓨터 기종인 ‘386’에서 따왔다. 처음엔 진보 운동권을 주로 지칭하는 어감이었지만 80년대의 민주화 갈망을 공유한 세대가 다양한 분화 과정을 거치며 그 의미도 확장됐다.

MB 386의 이력도 진보·좌파부터 공안 검사 출신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좌파 운동에 몰입했던 사람은 정태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태규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 윤석대 전 선대위 전략지역팀장, 이성권 한나라당 의원과 민중당 활동 경력을 가진 김용태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 등은 학창 시절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지만 졸업 후엔 현실 정치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김영삼 정부의 개혁정책을 지지해 민자당에 입당하거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한 민주당(이후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이 됨)에 들어가면서 한나라당과 인연을 맺었다.

전문직종 출신이 가장 많다. 시장 시절부터 이 당선인의 스터디를 도운 곽승준 고려대 교수와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검사 출신의 은진수·박준선 변호사는 네거티브 국면에서 활약이 컸다. 진성호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전문위원, 이성복 당선인 비서실 언론팀 인터넷 담당, 선주성 대통령취임준비위 홍보팀 실무위원 등 기자 출신도 여럿이다.

“아이디어 중시하되 결정권은 안 줘”

참여정부에서 386은 청와대 등 주요 의사결정권을 가진 위치에 중용됐다. 노 대통령은 386 참모를 ‘동지’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인터넷팀장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 백원우(42) 의원은 “대선 직후 인수위를 거치며 386 참모들이 청와대 어느 부서에 가서 어떤 역할을 분담할지를 토론해 결정한 뒤 대통령께 건의드리면 대개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17대 총선을 앞두고서도 386 참모들이 누구는 선거에 나가고 누구는 청와대에 남을지 등의 거취 문제를 상의해 정리하면 대통령께서는 이를 존중했다”고 밝혔다. 백 의원은 “다만 386 참모들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호철 민정수석비서관 등에게 일종의 ‘감사’ 역할을 맡겼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재연되지 않을 듯하다. 여태까지 이 당선인의 주요 의사결정을 보면 ‘475세대’(50년대에 출생해서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 이상의 비중이 더 커 보인다.

이 당선인의 오랜 조언자인 최시중(71) 전 한국갤럽 고문은 “당선인은 386이니 475니 하는 개념 자체가 없다”며 “어느 세대가 전권을 행사한다는 식의 얘기는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최 전 고문은 “다만 어느 사회에서건 40∼50대가 핵심 멤버로 기능을 하는 것이니 거기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MB의 최측근인 이춘식(58) 당선인 정무보좌역은 “당선인이 386 세대의 기획력과 패기·순수성 같은 걸 아주 좋아한다”며 “이들의 아이디어를 높이 사고 많이 취하지만 결정을 내릴 때는 현장 경험이 많은 위 세대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이 당선인의 비공식 자문역을 맡아온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은 “미디어 변화나 IT기술 등 새 트렌드에는 386이 민감하지만 경륜을 갖춘 475 세대가 의사결정권을 갖는 게 맞다고 본다”며 “386이 실세로 부상했던 참여정부 초기가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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