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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 3시간 … 기와 뜯어내자마자 불길 치솟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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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보 1호 숭례문이 재로 변한 5시간 동안 소방 당국과 문화재청은 우왕좌왕을 거듭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오후 8시50분. 서울 중부소방서 상황실에 “한 남성이 숭례문 계단에 올라간 직후 누각에서 연기와 불길이 치솟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8시57분까지 99명의 소방관이 숭례문에 집결했다. 오용규 중부소방서 진압팀장은 유관 기관에 연락해 달라고 상황실에 요청했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오후 8시59분부터 문화재청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30분이 지나서야 연결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측은 “오후 9시30분이 다 돼서 소방방재본부로부터 당직실에 전화가 걸려 왔다”고 진술했다.

오후 9시, 10여 명의 대원이 연기가 피어나는 숭례문 2층 누각에 올라갔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야 할 옆문과 1~2층 사이 문은 열려 있었다. 불이 붙은 나무 막대기를 발견한 대원들은 급히 불을 껐다. “이것 때문에 신고했나 보다”고 오 팀장은 생각했다. 하지만 위를 올려다보니 천장은 온통 연기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긴 꼬챙이로 불이 붙은 나무를 부수려 했지만 단층 사이에 붙은 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중구청 관계자 20여 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넋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 구청 관계자는 전했다. 소방 당국과 진화 과정을 협의해야 할 문화재청 담당자 6명은 화재가 발생한 뒤 한 시간여 지난 오후 9시30분쯤 부랴부랴 청이 있는 대전을 출발해 현장으로 향했다.

오후 9시55분, 화재비상 2호가 발령되면서 도착한 추가 인력이 사다리차에 올라 지붕 뜯기를 시도했다. 이미 화염이 기와 사이로 날름거리기 시작해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소방 관계자는 “잔불 정리만 남았다”고 현장 분위기와 다른 말을 하기도 했다.

화염은 내부 구조물을 다 삼킨 뒤 지붕을 덮기 시작했다. 불길이 지붕 위까지 뻗쳐 올라오기 시작한 오후 11시가 돼서야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도착했다. 소방 당국은 전술을 수정, 기와 사이 빈틈으로 물을 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1시50분쯤 불길은 기세가 오를 대로 올랐다.

11일 오전 1시가 되자 뼈대만 남은 2층 지붕 뒷면이 무너졌다. 소방 관계자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 (지붕을) 뜯었어야 하는 건데…”라며 아쉬워했다. 결국 1시54분, 누각 2층 전체와 1층 대부분이 화마를 못 이기고 허물어졌다.

서울시 문화재과는 11일 중구청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소방 당국이 문화재청의 지휘를 받는 과정에서 의사 결정이 지연돼 (발화 지점) 주변에 물을 뿌리는 간접 진화 위주에서 화재 발생 72분 후에야 직접 물을 뿌리는 진화 방식으로 변경됐다고 주장했다. “오후 9시30분쯤 중구청 관계자가 실측설계보고서를 제공하며 기와를 제거한 뒤 직접 물을 뿌리는 방식의 강경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문화재청 간부가 현장에 없어 최종 강경 진압 결정이 오후 11시 이후로 지연됐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소방 관계자는 “중구청으로부터 강경 진압 등 어떤 요청도 받은 바 없다”며 “불길이 눈에 보일 경우 직접 물을 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중부소방서 관계자들은 12일 오전 중구청을 항의 방문할 예정이다.

이충형·정선언 기자



200억원

숭례문 복구에 드는 추정 비용이다. 문화재청이 공사가 진행 중인 광화문 복구비용이 250억원인 점을 감안해 추산했다. 보험금이 적어 복구 비용 대부분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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