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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산 사람이 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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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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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사는 주부 진모(62)씨는 2001년 미래에셋디스커버리 주식형 펀드에 여윳돈 1000만원을 넣었다. 가입 두 달 만에 미국에서 9·11 테러가 터졌다. 순식간에 원금까지 까먹었다. 불안했지만 그는 참았다. 이듬해 봄이 되자 평가액이 투자금의 두 배가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후 1년 만에 번 돈의 60% 이상이 도로 날아갔다. 두 눈 질끈 감고 또 환매 유혹을 넘겼다. 가입 3년 반이 지나자 평가액은 투자금의 세 배가 됐고 지난해에는 열 배인 1억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최근 몇 달 새 주가가 급락하는 바람에 평가액은 다시 7500만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언젠가 주가가 다시 뛸 테니 이젠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긴 설 연휴 끝에 열리는 증권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마음은 불안하다. 아시아 시장이 쉰 사이 미국과 유럽 증시가 몸살을 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이 불안할수록 이를 이기는 지름길은 역시 장기투자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이는 본지가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 중 수익률 1등을 한 ‘미래에셋디스커버리 주식형 펀드’에 2001년 7~9월과 2005년 1월 가입한 707명의 수익률을 처음 추적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입증됐다.

◇시장 앞에 장사 없다=7년 전 가입한 A씨는 주가 등락에 따라 돈을 추가로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26개월간 총 2억여원을 굴린 그가 마지막에 쥔 돈은 1억2000만원이 채 안 됐다. 반토막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펀드 전체 수익률은 거의 100%에 달했다. 돈을 그냥 놔뒀다면 원금이 두 배로 불었다는 뜻이다.

같은 방식으로 2005년 한 해 동안 2300만원을 굴린 B씨도 160만원(약 7%)의 손해를 봤다. 펀드는 이 기간에도 90% 이상 수익을 올렸다. 미래에셋증권 오준형 과장은 “남보다 더 벌려고 빈번한 거래를 한 사람이 외려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수익률 다 챙긴 사람 드물어=이 펀드의 최근 3년 수익률은 152%다. 그런데 3년 전 가입자 538명 중 이를 다 챙긴 사람은 고작 20명(4%)으로 나타났다. 수익률 100%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도 43명뿐이다. 펀드 수익률만큼 돈을 버는 사람이 드문 것은 장기투자가 적어서다. 열 명 중 일곱 명꼴로 3년이 되기 전에 돈을 뺐다.

7년 전 가입자 169명도 마찬가지다. 가입 후 지금까지 돈을 묻어둔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역시 전체의 67%가 3년이 안 돼 손을 털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설 연휴 직전인 4일 현재 이 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665.72%다. 그러나 초기 가입자 중 400% 이상 수익을 낸 사람은 6명(4%)에 불과했다.

그동안 국내 주가가 꾸준히 올라 적립식 투자자들이 거치식만큼 수익을 내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투자기간이 짧은 것이 더 큰 원인이다.

◇기다린 사람이 승리=3년 전 가입자 중 투자기간 1년 미만인 사람의 평균 수익률은 20%다. 이어 1∼2년(38%), 2∼3년(57%), 3년 이상(76%) 순으로 수익률이 올라갔다.

뒤집어 보면 이해가 더 쉽다. 해당 시점 가입자 중 원금을 까먹은 사람이 펀드에 돈을 넣어둔 기간은 평균 242일, 수익률이 20% 미만인 사람은 310일이었다. 반면 원금을 두 배 이상으로 불린 사람은 평균 1064일간 돈을 묵혔다. 투자자 개인별로는 거치식이냐 적립식이냐, 중간에 돈을 언제 얼마나 넣고 뺐느냐에 따라 수익률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변수에도 기다린 투자자가 결국은 시장을 이겼다.

굿모닝신한증권 이계웅 펀드리서치팀장은 “닷컴 거품 붕괴나 9·11 후에도 시장은 다시 살아났다”며 “주식이 아니라 ‘시간’을 산 투자자가 항상 승자가 됐다는 게 변함없는 증시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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