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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트 … 책이 예술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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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이 낳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름다운 건축이라고 답하리라. 그 다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하리라.”

예술품으로서의 책이 있다. 텍스트를 담아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 가치를 웅변하는 책. 그리고 그런 책을 만드는 일과 사람이 있다. ‘북아트’, 그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서울 서교동에 있는 ‘북아티스트 그룹 수작(www.thesujak.com)’의 스튜디오에는 “We are doing artists’ books”라고 적혀 있다. 북아트와 아트북, 아티스트북이라는 용어가 혼재된 지금, 자신들은 ‘아티스트북’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그들은 말한다. 아티스트북은 ‘아트’를 다루는 책도 아니고 단순히 예쁜 책도 아니라는 얘기다. ‘London Wall’이라는 작품에 런던 여행의 기억을 일기처럼 담은 김혜미씨는 “아티스트북의 가치는 다른 모든 예술품의 가치에 더해 직접 만지고 넘기며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화가가 액자에 그림을 넣듯, 북아티스트들은 책 안에 예술을 담는다. 그 때문에 작가들 중에는 판화나 사진을 전공한 이들이 많다. 대량생산까지는 아니어도 판화나 실크스크린, 사진은 수십 부 내지 수백 부의 에디션 발매가 가능한 기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프린터가 발달한 요즘에는 원본을 스캔하여 얼마든지 찍어낼 수도 있다. 다만 선택은 작가의 몫이다. 단 한 개의 작품만 존재할 수도 있고, 수십 개의 작품이 존재할 수도 있다. 본래 디자인을 전공했고 현재도 병행 중인 임현춘씨는 클레이 인형을 사진으로 찍고 그 옆에 예쁜 동화의 텍스트를 덧붙인 자신의 작품을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작은 책으로 만들었는데 “전국민이 한 부씩 소장할 때까지 뿌리는 것이 목표다(웃음)”라고 말했다.

책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하기에 아티스트북은 그저 책이 아닌, 조그만 설치미술처럼 보일 때도 많다. 한 페이지를 넘겼을 뿐인데 웃는 얼굴이 왠지 슬픈 ‘Dreaming Girl’(서효정 작가)의 이미지가 첩첩이 쏟아져 내리고, 앤디 맥개리의 뉴욕 여행기 『New York』에선 단 한마디 문장이 그림과 어우러지며 이방인의 기묘한 처지를 메아리처럼 증폭시켜 전달한다.

한국에서 아티스트가 작업한 책을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 뉴욕의 ‘프린티드 매터’와 런던의 ‘북아트 북샵’같은 전문서점이 없고, 갤러리에서도 북아트 작품은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4월에 삼원페이퍼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인 북아트 전시회나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열릴 예정인 북아트페어 ‘서울국제북아트전’은 북아트 작품을 한번에 감상하고 구입도 할 수 있는 흔치않은 자리다.

출판사를 통해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북아트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인터넷 서점 웬디북(www.wendybook.com)은 예술에 가까운 아름다운 책들을 만날 수 있는 사이트다. 김지수 대표가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자신의 홈페이지를 찾는 지인들과 공동구매를 진행하면서 아예 서점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해 시작한 사이트가 지금처럼 커졌다. ‘팝업북 컬렉션’ ‘프렌치북 컬렉션’ ‘칼데콧 상(미국에서 그 해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게 수여하는 상) 수상작’ 등의 카테고리가 있어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볼 수 있다.

글=김현정 중앙선데이 객원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쉽게 구할 수 있는 ‘북아트’ 어떤게 있나

 북아트는 책을 예술로, 특별한 물건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하지만 작가가 손수 그리고 꾸민 북아트 작품은 필연적으로 대량생산과는 어긋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도 북아트의 정의를 너그럽게 적용해, 수단으로서의 책을 넘어선 책 중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아름다운 책 매니어’ 정은지씨의 추천을 통해 알아보았다.

① 『One Red Dot』

David A. Carter 지음/ Little Simon 펴냄

데이빗 A. 카터는 성공한 팝업 작가다. 스무 권에 달하는 메가 히트작 『벅스』 시리즈가 그렇듯 예술성이나 완성도보다는 상업성에만 치중한다는 게 일반적 평이었다. 하지만 2005년 『One Red Dot』으로 그는 팝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팝업 북이 튀어나오고 삐져나오는 기법을 통해 재미를 주는 어린이용 책이라는 선입견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One Red Dot』의 책장을 펼치는 것은 전시회에 입장하는 일과 같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19.95달러라는 가격이다.

② 『Imagine』

Norman Messenger 지음/ Walker Books 펴냄

만일 열쇠구멍이 없는 자물쇠가 있다면, 주둥이 없는 주전자가 있다면, 바퀴가 사각인 자전거가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표범 머리에 타조 다리에 얼룩말 엉덩이에, 계속 변신하는 동물이 있다면? 사람들의 눈 코 입을 서로서로 바꿀 수 있다면? 직접 뛰어들 때 판타지는 현실이 된다. 기괴하지만 아름답게, 우울하지만 매혹적으로. 노먼 메신저는 광고사 아트 디렉터 출신이다. 그는 플립과 휠(원반을 돌려보기)을 독자가 움직이게 하는 영리한 전략으로 판타지와 현실의 교차를 수동적 구경이 아닌 능동적 행위로 만들어 일상의 판타지를 손에 잡힐 것 같은 거리로 끌어내린다.

③ 『Star Wars: A Pop-Up Guide to the Galaxy』

Matthew Reinhart 지음/ Orchard Books 펴냄

소설이 히트하면 영화로 만들고, 게임이 성공하면 장난감도 나온다. 이제 ‘원 소스 멀티 유즈’는 콘텐트 사업자에게 마법의 주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원작의 인기에 편승해 날림으로 만들어낸 함량미달의 상품이 적지 않다는 것은 소비자로서는 안타까울 따름. 그런 모든 설움에 종지부를 찍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페이지마다 큰 팝업 하나에 작은 팝업 여남은 개씩, 가면 속 다스베이더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고 광선검에서는 진짜 빛이 나고. 양적이건 질적이건 부족함이 없어서 ‘스타워즈’ 팬이 아닌데도 사고 싶어진다.

④ 『Fashion a la Mode』

Isabelle de Borchgrave 지음/ Universe 펴냄

이자벨 드 보쉬그라브는 명망높은 장식예술 디자이너다. 빌레로이 앤 보흐·타겟 등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식기·직물 등을 출시하고 에르메스·LVMH(루이 뷔통+모에 헤네시)의 쇼윈도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그녀의 다채로운 작품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전시가 ‘Papiers a la Mode’. 복식사 300년을 종이로 만든 실물 크기 디자인으로 재현한 이 전시회로 이름을 떨쳤다. 이 전시가 책으로 승화된 것이 이 책이다.

<북아트 강좌가 열리는 곳>

◇‘북아티스트 그룹 수작’이 운영하는 ‘수작 아카데미 워크숍(www.thesujak.com)’=북아트의 기본이 되는 북바인딩은 물론 판화와 콜라주·포토몽타주·실크스크린·스텐실·수제종이 제작 기법 등을 가르친다.

◇김나래 작가의 워크숍(www.bookarts.pe.kr의 ‘북프레스’ 카테고리 클릭)= 두달 과정으로 종이접기를 비롯해 어린이 북아트 지도 과정에 필요한 과목이 들어있 다.

◇‘즐거운 책만들기 교실(www.kidsbookart.com)’=어린이 북아트 지도과정뿐만 아니라 어린이 북아트도 배울 수 있는 강좌. 갤러리를 찾아가면 설치미술에 가까운 창조력으로 만든 아이들의 북아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글=정은지(자유기고가), 자료협조 웬디북(www.wendy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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